덧없는 양들의 축연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최고은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클로즈드 서클 트릭을 사용한『인사이트밀』과 코지 미스터리인『봄철 딸기 타르트 사건』,『여름철 트로피컬 파르페 사건』등으로 잘 알려진 요네자와 호노부의『덧없는 양들의 축연』은 각 작품이 미묘하게 연결점이 존재하는 연작단편집이다. 처음에는 소제목들을 보면서 단편이라 생각했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이 책에 수록된 작품들이 완벽한 연작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주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하달까. 게다가 마지막 한 줄의 반전은 정말 상상을 뛰어 넘었다. 

<집안에 변고가 생겨서>는 무라사토 유우히의 수기와 탄잔 후키코의 회상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진행된다. 유우히는 탄잔家의 하녀로 후키코의 몸종이다. 집안의 후계자인 후키코를 보호하기 위한 유우히의 노력과 유우히와 후키코 사이에만 존재하는 비밀, 그리고 유우히는 모르고 후키코만 아는 어떤 것이 이 소설의 중심 내용이다. 후키코의 오빠 소타의 죽음과 할머니, 고모로 이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 과연 그 범인은 누군인가. 이 단편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후키코가 유우히에게 말해주는 수많은 책들의 제목이다. 이 책중에 이즈미 교카의 책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더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므로 여기에서 그만!)

<북관의 죄인>은 무츠나 가문의 전 당주인 쿄이치로가 밖에서 낳은 딸 아마리가 무츠나 가문으로 들어오면서 생긴 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마리는 북관이라 불리는 곳에서 장남 소타로를 감시하게 된다. 소타로는 아마리에게 이런 저런 부탁을 하는데, 과연 그의 의도는? 그리고 소타로가 남긴 그림에 얽힌 비밀은?

<산장비문>은 타츠노家의 별장에서 일하는 야시마라는 별장지기의 이야기이다. 일년 내내 그곳에서 머무르면서 손님을 기다리는 야시마. 하지만 왠일인지 손님이 오지 않는다. 별장지기로서의 그녀의 임무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던 어느날 뜻하지 않는 손님이 찾아오게 되는데...

<타마노 이스즈의 명예>는 오구리 가문의 영애 스미카와 스미카의 몸종 타마노 이스즈의 이야기이다. 스미카와 이스즈는 동갑내기로 스미카는 이스즈를 친구처럼 대했다. 하지만, 스미카의 아버지가 오구리家에서 쫓겨나고, 스미카의 어머니가 재혼하면서 생긴 아이가 오구리 가문의 후계자로 지명되면서 스미카는 남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게 되는데...

<덧없는 양들의 만찬>은 오데라 가문의 딸 마리에가 남긴 일기를 누군가가 읽게 되면서 시작된다. 오데라 가문의 음험한 비밀과 새로 들어온 최고의 요리사 츄냥, 마리에가 츄냥에게 만들라고 한 아밀스탄 양요리. 과연 아밀스탄 양요리는 어떤 맛이었을까.

각 단편의 내용을 놓고 봤을 때는 이게 무슨 연작이야? 하는 생각도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단편들 속에는 한가지 공통된 것이 등장한다. 그것은 바로 부잣집 아가씨들의 독서 모임인 '바벨의 모임'이다. 그러나 아무리 읽어도 '바벨의 모임'이 완벽하게 내부까지 드러나지는 않는다는 것에 의문이 생겨난다. 하지만 마지막 단편에서 '바벨의 모임'에 관한 이야기가 밖으로 드러나게 되고, 그 모임의 멤버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떤 운명의 길을 걸었는지 유추할 수 있게 만든다. 오 마이 갓, 이라고 하면 호들갑스러울려나? 하지만 한편 한편의 완결부분을 볼 때도 그렇지만, 마지막 단편에서 그것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이는 이 책을 읽지 않으면 절대로 알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 작품들의 또다른 공통점으로는 오래된 가문, 즉 구가(舊家)가 등장한다는 것이 있다. 모두 재벌가로 지역 유지로서 활약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운 집안이지만, 모두 음험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은 후계자 문제와 관련한 끔찍한 비밀들이다. <산장비문>을 제외하고는 죄다 후계자 문제와 관련한 다툼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 후계자 문제와 집안의 체면을 위해 피붙이에게도 냉혹한 인간군상들을 보면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이고, 그런 것으로 인해 생겨나는 인간들의 집착과 욕망이 만들어낸 악의가 이들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하지만, 이런 악의는 작품을 끝까지 읽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것은 마지막 한 줄에 모든 판도를 뒤집어 놓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대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의 내용이 시시하다는 것은 아니다.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음험한 기운이 책전반에 안개처럼 떠돌기 때문이다. 그 기운이 마지막에 집중된 것이라고 보면 될까?

아직 젊은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느낌의 작품을 써내는 요네자와 호노부. 그의 다른 작품인 인사이트밀은 두껍다는 이유로 여지껏 미뤄놓고 읽지 않았는데, 다른 번역서가 나오기 전에 미리 읽어 두고 싶단 생각이 든다. 그의 '고전부 시리즈'를 만날 날을 기대하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