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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평점 :
난 뱀파이어 이야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어릴때 - 초등학교 시절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읽으며 뱀파이어 이야기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그후로 고전으로 취급받는 뱀파이어 이야기들을 읽으며 세상에 존재하는 이형의 존재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뱀파이어가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인간과 가장 닮은 모습을 가진 불멸의 존재들. 하지만 요즘 들어 읽어본 뱀파이어 이야기는 독자에게 어필하는 내용이라기 보다는 작가의 로망을 담은 소설들이 많았다. 고전적인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달리 너무 가벼웠달까. 특히 하이틴을 주인공으로 하는 뱀파이어 이야기는 작가의 로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반복되는 스토리에 넌덜머리가 났고, 뱀파이어와 늑대인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주인공의 모습에 짜증이 났었다. 그 뒤에 읽었던 시리즈물은 뱀파이어와 인간의 혼혈아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역시나 여주인공의 개차반같은 성격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읽는 것을 관둬버렸다. 그나마 요즘 나온 뱀파이어 시리즈물 중에서 성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시리즈물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뱀파이어처럼 인간이 아닌 존재가 등장하는 소설이니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수많은 다른 존재들이 등장하는 것도 무척이나 흥미로운 요소중의 하나였다.
그렇다 보니 렛미인을 선택할 때 무척이나 망설이게 된 것도 당연하다. 이미 하이틴들이 나오는 뱀파이어물에는 신물이 났던지라, 성인들이 나오는 뱀파이어물을 선호하게 되었던 나. 그러나 렛미인은 하이틴도 아니고 오히려 로우틴들이 등장하다 보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의 연령이 그렇다 보니 판타지 성향이 더욱 강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망설여지는 이유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나와 비슷한 성향의 책을 좋아하는 지인의 추천 - 하이틴들이 나오는 그런 뱀파이어 이야기와는 다르다 -도 있었고, 오히려 아이들이 주인공이기에 더욱 순수한 이야기가 그려지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도 작용해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다.
엄마와 단 둘이서 사는 열두살 소년 오스카르는 외톨이이다. 학교에서는 자신보다 힘센 아이들에게 늘 시달림을 당한다. 그것은 말로 인한 폭력을 넘어 육체적인 고통까지도 가한다. 왜 오스카르가 그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는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아이들은 괴롭힐 누군가가 필요했을 뿐이니까. 오스카르는 그런 일을 엄마에게 절대 이야기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여린 엄마는 그 일에 대해 상처받을게 뻔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런 아픔은 오스카르의 마음에 고스란히 축적되고 있었다.
오스카르가 사는 곳은 스톡홀름의 교외 블라케베리란 곳으로 한적한 작은 마을이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사람들이다. 오스카르보다 약간 더 나이 많은 아이들은 본드를 흡입하고 물건을 훔쳐 장물로 팔아 넘긴다. 술주정뱅이 남자 어른들은 변두리 술집을 전전한다. 어딜 봐도 음침하기만 하다. 그러던 어느 날 숲속에서 온몸의 피가 몽땅 사라진 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오스카르는 혹시 자신의 초능력이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왜냐하면 그 전날 그 숲 근처에서 썩은 나무를 나이프로 찍어댔기 때문이다. 그정도로 오스카르의 마음의 상처는 깊었다.
여전히 외롭고 힘겨운 열두살의 나날을 보내는 오스카르는 한밤 중의 텅빈 놀이터에서 엘리라는 이름을 가진 또래 소녀를 만난다. 엘리는 오스카르의 이웃집에 사는 소녀로 낮에는 한발짝도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엘리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또래보다 작고 여린 몸집의 엘리. 오스카르와 엘리는 서로가 가진 외로움에 반응한다. 그렇게 외로움이 외로움을 불렀던 것일지도... 엘리와 오스카르는 밤에만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루빅스 큐브를 맞추기도 하고, 모스 부호를 통해 연락을 주고 받기도 한다.
오스카르는 엘리와의 만남이후 조금씩 변해간다. 처음에는 아이들의 괴롭힘도 그저 받아들이기만 했을 뿐이지만, 이제는 반격에 나선다. 하지만 이런 오스카르에 변화와는 달리 엘리는 궁지에 몰리기 시작한다. 자신을 위해 일해주던 호칸이 그 일을 거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엘리는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사냥에 나서지만 열두 살 난 아이의 몸을 가지고 있는 엘리에게 어른들을 사냥하는 것은 너무나도 힘겨운 일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뱀파이어들은 대부분 인간보다 강한 존재라고 여겨진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안개나 박쥐로 변신하기도 하며, 보통의 인간보다는 몇 배나 힘이 세기 때문에 인간에 비해 강자로 여겨진다. 하지만 엘리는 포식자의 입장에 있어도 약자이다. 낮에는 나오지도 못하고, 어른을 사냥할 때는 힘에 부치기도 한다. 결국 엘리는 호칸의 도움을 받아 이제까지 생명을 연장해 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을 사냥하지만 인간의 도움을 받아 생명을 연장해 온 엘리의 존재는 안쓰러움을 안겨준다.
오스카르와 엘리는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가 되어 간다. 하지만 오스카르는 어떤 일을 계기로 엘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불현듯 깨닫게 된다. 엘리의 정체를 알아버린 오스카르는 앞으로 엘리를 어떻게 대할까. 그리고 친구의 죽음에 관한 진실과 사랑하는 여인을 습격한 존재의 정체를 쫓는 라케는 앞으로 엘리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이다. 이젠 뱀파이어의 인간 사냥이 아니라, 인간의 뱀파이어 사냥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엘리와 오스카르는 친구로 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엘리는 인간들을 피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