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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3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0년 8월
평점 :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작가 미쓰다 신조. 도조 겐야 시리즈 3권인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을 서점에서 만났을 때 어찌나 반갑던지. (아, 그렇다고 내가 다른 책을 읽어본 것은 아니다) 흥미를 유발하는 책 제목을 보면서 내용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책을 배송받아 보니 책 표지가 기묘하게 접혀있었다. 부시럭대면서 일단 책 표지를 촥 펼쳤다. 헉! 기괴하면서도 아름답다! 안쪽 표지에는 우물이 바깥쪽 표지에는 붉은 기모노를 입은 소녀와 먼 곳을 응시하는 소녀의 얼굴이 보인다. 섬뜩하다기 보다는 아름다웠달까.
책내용이 견딜 수 없게 궁금해진 나는 얼른 책을 펼치고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꽤 두꺼운 이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그정도로 흡인력 있는 작품이랄까. 특히 마지막 부분의 몰아치는 반전의 반전, 반전, 반전...... 은 정신없을 정도였다. 그리고 제일 마지막 페이지의 <서재의 시체> 4월 호 표지까지. 정말 만족스러웠달까. 물론 약간의 의문은 좀 남았지만 말이다.
일단 소설의 구성은 히메노모리 묘겐이라는 여성 추리작가가 쓴 원고를 바탕으로 도조 겐야란 방랑 환상소설가가 엮고 재구성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소설은 당시 사건 담당 경찰인 다카야시키와 이치가미가에서 일하던 하인인 요키타카라는 소년을 각각 중심 인물로 세워 서술된다. 그러나 시점은 모두 3인칭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제 2차 세계대전중에서 시작하여 그후 약 30년간이다. 지역은 간토의 오쿠타마의 히메카미 마을로 그곳에는 히가미 일족이라는 구가(舊家)가 있었다. 그 히가미 일족에게 일어나는 끔찍한 사건이 바로 이 책의 내용의 중심이 된다.
30년전 십삼야의 의식이 있던 날 밤, 이치가미가의 후계자인 조주로의 쌍둥이 여동생이 우물에서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러나 그 사건은 히메쿠비산이라는 완벽한 밀실 상태의 공간에서 벌어졌고, 사건은 해결은 커녕 용의자조차 추리지 못했다. 그후 10년이 지나 이십삼야가 지나 조주로의 신부를 정하는 날, 신부 후보 한 명과 조주로가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된다. 그리고 또다시 후타미가의 고지가 머리 없는 시체로 발견되는데... 이 사건은 사람이 저지른 것일까, 아니면 아오쿠비님의 지벌인 것일까.
언뜻 보면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사람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속이나 육지에서 먼 섬을 다스리는 일족간에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게다가 거기에 신비스러운 요소까지 결합되는 것도 비슷하다.『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에서는 역사적 인물인 아오히메와 오엔님을 합쳐 아오쿠비로 부르는데, 이들은 히가미가를 수호하는 존재인 동시에 지벌을 내리는 존재이다. 특히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병약해서 일찍 죽거나 사고사를 당하는 일이 잦아 히가미가 내에서는 삼야라는 의식을 십년마다 치르고 있다. 히가미가의 일족은 이치가미, 후타가미, 미카미가로 나뉘어져 있으며 후계자를 내는 집안이 이치가미가 된다. 따라서 집안간에 자신의 집에서 서로 후계자를 내놓으려는 암투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여아는 무시되는 경향이 있고 남아를 중심으로 집안이 돌아간다. (구가의 습성!)
하지만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와 다른 점이라면, 탐정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은 세 그룹이다. 첫번째 그룹은 경찰, 두번째는 에가와 란코라는 탐정 소설가, 그리고 세번째가 도조 겐야라는 방랑 환상소설가이다. 한 사람과 다수라는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경찰들의 토론, 탐정 소설가 에가와 란코의 추리, 그리고 마지막으로 못을 박은 - 그러나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 도조 겐야의 추리까지 이어지는 사건의 진상을 밝혀가는 흐름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그리고 그 진상을 밝혀가는 시기는 거의 10년을 주기로 한다)
추리 소설을 읽으면서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트릭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않는 추리소설 마니아는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추리 소설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 열심히 추리를 했다. 내가 알아낸 것은 딱 두가지. 그외는 다 틀렸다. 특히 마지막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부문에서는 책 내용을 따라가기만도 벅찼달까. 하지만 내 경우 추리 소설을 즐기는 입장이니 내 생각이 맞든 틀리든 간에 스토리가 재미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일족 간의 후계자 싸움, 가문의 관습과 인습 그리고 지벌을 내리는 존재인 아오쿠비 전설. 모든 것은 유기적으로 엮여 그 재미를 더한다. 특히 이 작품의 트릭은 서술 트릭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정보는 넘치지만 유의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뭐가 뭔지, 라는 느낌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머리 없는 시체를 만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더이상의 언급은 않겠지만, 머리란 것에 모든 비밀이 다 있다고 할까. 특히 에가와 란코가 정리한 머리 없는 시체를 분류하는 11가지 방법에 그 비밀이 숨어 있다.
중간에 갑자기 '심야의 목찢는 살인마'가 등장해서 미친듯이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나오는데, 그게 왜 필요한 건지는 잘모르겠다. 아마도 독자에게 혼선을 주거나, 신비로운 느낌을 더해주기 위해 그 내용이 들어갔는지도 모르겠다. 또한 어린 요시타카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나, '심야의 목찢는 살인마'를 찾아온 손님의 정체도 결국 드러나지 않았으니, 정말 뭔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히가미가에서 일어난 사건은 일단 첫 사건 발생으로부터 30여년이 지난 후에야 히메노모리 묘겐과 도조 겐야의 대화에서 그 전말이 다 밝혀진다. 특히 도조 겐야가 사건의 모든 수수께끼와 문제를 일괄적으로 정리한 다음 차근차근 그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무척이나 흥미로웠다. 여기에서 폭풍반전이 등장. 그리고 세가지의 신문 기사와 마지막 페이지의 잡지 표지의 글도 놓치지 말고 꼼꼼히 읽어야 그 나머지 수수께끼도 풀린다. 이건 독자 몫으로 남겨준 작가의 배려랄까. (笑)
정말 멋진 추리 소설을 만났다. 앞으로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를 전부 만나보고 싶다면 내 욕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