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 매드 픽션 클럽
미치오 슈스케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사람의 심리를 잘 포착해 내는 다양한 소재의 미스터리를 써내는 작가, 미치오 슈스케, 내가 이번에 집어든 작품은 최근 번역되어 나온『용의 손은 붉게 물들고』이다. 원제는 용신의 비. 왠지 판타지적 느낌이 든다. 그의 전작인『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과『외눈박이 원숭이』, 그리고『등의 눈』은 미스터리이면서도 판타지 성향이 가미되어 굉장히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냈고,『섀도우』의 경우 너무나도 현실적인 이야기이면서 강렬한 반전을 준 작품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은 그런 성향들이 잘 조합되어 있다고 해야 할까. 용과 용신이라는 상상속의 존재를 끌어오긴 하지만, 전반적인 이야기는 현실에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역시 복선이 곳곳에 숨겨져 있고, 반전의 효과 역시 크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두 가족이 있다. 소에키다 렌과 소에키다 가에데는 남매이고, 미조타 다쓰야와 미조타 게이스케는 형제이다. 소에키다 남매의 경우 오빠는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 안되었고, 여동생은 중학생이다. 미조타 형제의 경우 다쓰야는 중학생, 동생 게이스케는 초등학생이다. 얼핏 봐서는 전혀 공통점이 없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이 두 가정의 아이들에게는 커다란 공통점이 존재한다. 바로 결손가정의 아이들이란 것이다. 소에키다 남매의 아버지는 아이들이 어릴때 집을 나갔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숨졌다.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은 어머니의 재혼 상대. 미조타 형제의 경우 어머니는 심장병으로, 아버지 역시 병으로 사망,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의 재혼 상대이다.

피가 섞기지 않은 가족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것. 만약 공통의 가족이 있다면 별로 이상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피가 섞인 부모는 다 죽어 버리고, 법적인 가족만이 남는다면? 정말 '하늘이시여'라고 외치고 싶은 상황이 아닐까. 게다가 소에키다 남매와 함께 살고 있는 남자는 일도 그만두고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이제는 가에데를 노리는 듯 하다. 다쓰야, 게이스케를 돌보는 사토에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 모습에 게이스케는 사토에에게 마음을 열고 싶지만, 다쓰야는 사토에가 슬퍼할 일만 골라서 하고 있다.

가족이지만, 가족으로 인정할 수 없다. 그리고 피를 나눈 가족이라도 서로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로가 가진 비밀때문에 오해가 생기고, 서로를 감싸주고 싶은 마음이 시야를 좁게 만든다. 모든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렌은 새아버지가 가에데를 노린다고 생각하기에 죽이고 싶어 한다. 가에데는 그런 렌을 보며 혹시라도 렌이 일을 벌이지 않을까 불안해 한다. 다쓰야는 자신의 엄마가 사토에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게이스케는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세찬 비바람이 불어 오던 날, 비극의 막이 올랐다.
모든 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단지 때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

렌의 새아버지의 죽음, 사체 유기, 목격자, 협박장......
이야기는 중심 인물을 바꿔가며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그리고 서로의 숨통을 조인다. 과연 누가 렌과 가에데의 범죄에 대해 알고 있을까. 이야기는 한 특정인을 '그 인물'로 지목하는듯 보인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시야가 좁아질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그 인물'로 생각되는 순간, 독자는 함정에 빠지고 마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곳곳에 깔려 있는 복선을 의심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반전이 시작되면서 나는 당혹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그리고 '괴물'의 정체를 알게 되고, 그 '괴물'이 어떤 짓을 벌였는지를 알게 되면서 등줄기가 오싹해져 왔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알지 못했던, 아니 외면해왔던 '진실'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되면서 묘하게 슬퍼졌다.

책의 목차를 보면 그들, 그, 그녀, 용, 괴물, 성 등의 단어가 나온다. 문득 판타지처럼 보이는 목차이지만, 이 단어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특히, 용이 가지는 의미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여기에서 언급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므로 용의 의미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하도록 하겠다. (직접 확인하세요)  이 책의 또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신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이다. 야마타노오로치와 스사노오노미코토에 관한 이야기로, 이것은 현실의 이야기와 맞물려 재미를 더해준다.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들인 가족. 가정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그 가정의 구성원인 가족밖에 모른다. 도대체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서. 하지만 가족이라 해도 전부 이해하고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가 들어 가면서 가족에게도 숨기고 싶은 비밀이 생기게 마련이니까. 또한 가족이기에 감싸주고 싶은 마음에 배려를 하다 일을 그르치는 경우도 생긴다. 지나친 배려가 오히려 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믿고 싶은 마음, 그것 역시 때로는 양날의 검처럼 작용한다. 가장 믿을만하다고 생각한 상대가 가장 큰 적일수도 있으니까.

이 작품은 스토리가 전개되는 내내 태풍으로 인한 비바람이 몰아친다. 그래서 그런지 안그래도 음습한 내용에 음울함까지 더한다. 하지만, 기억해야할 것은 태풍과 비는 무대장치일 뿐이며, 모든 것은 사람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사람에 의해 벌어지고, 사람에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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