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수확 동서 미스터리 북스 71
대쉴 해미트 지음, 이가형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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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추리 소설을 무척이나 좋아하지만 아직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을 제대로 읽어 본 적은 없다. 일본의 여성 하드보일드 소설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은 몇번 접해 보긴 했지만, 그걸로는 부족헀다. 그래서 하드보일드 소설의 출발점이며,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이라고 하면 일단 먼저 떠오르는 해미트나 챈들러의 소설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영미 추리 소설 작가로는 애거서 크리스티나, 코넌 도일, 엘러리 퀸을 좋아해서 어린 시절부터 많이 읽기는 했지만, 작가 편식주의가 심한 나로서는 다른 작가에 도전할 생각도 못했기에 추리 소설팬이 되고서 거의 20년만에 정통 하드보일드 소설을 접하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해미트를 선택한 또 하나의 동기는 얼마전에 읽은 요시자키 세이무의『가방도서관』이란 만화의 영향이란 것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 만화에 나오는 에피소드 중에 해미트의 책과 챈들러의 책이 총 세 권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책인『피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해미트의 번역서 중 제일 하드보일드다워 보이는 책을 고르고 싶었는데, 또한 그런 이유로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달까.

각설하고.
피의 수확은 한 광산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샌프란시스코의 탐정 사무소에 일하는 '나'는 퍼슨빌(혹은 포이즌빌)이라는 곳에 사는 도널드 윌슨의 의뢰를 받고 퍼슨빌로 향한다. 하지만 의뢰인을 만나기도 전에 의뢰인이 사망하고 만다. '나'는 의뢰인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밝히는 한편, 창녀 다이너의 도움을 받으며 퍼슨빌을 장악하고 있는 어둠의 세력과 대결하게 된다. 도널드 윌슨의 죽음은 퍼슨빌의 팽팽한 긴장상태를 끊고, 어둠의 세력들이 서로에게 방아쇠를 당기게 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원래 지배자였지만, 지금은 뒤로 밀려난 도널드 윌슨의 아버지 엘리휴 윌슨을 비롯해, 암흑가의 보스이자 밀주상인 핀란드인 피트, 암흑가의 보스인 류 야드, 도박장을 가진 도박꾼 휘슬러, 그리고 류 야드의 후계자인 레노, 그리고 경찰 서장인 존 누넌 등이 서로에게 총격을 가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미스터리의 강도와 세력은 약한 편이다. 오히려 갱스터들의 피비린내나는 살육전이 중심이 된 액션소설같다고나 할까. 그렇다보니,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팽팽히 맞서던 어둠의 세력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과정이 좀더 많이 표현되었다. 어떻게 보면 도널드 윌슨의 죽음이 퍼슨빌을 무법지대로 만들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탐정인 '나'가 그것에 기름을 부은 것이나 다름없다. 탐정이 등장해서 문제를 해결할 줄 알았더니, 문제를 더 크게 만든 꼴이랄까. 뭐, 탐정 역시 목숨의 위협을 받게 되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면 그들을 모두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전체적으로 크게 보았을 때는, 악의 응징과 정의구현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일단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탐정은 그런 행동을 취할 수 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소설 속에서는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 하지만, 그에 대한 탐정의 반응은 냉정하고 냉혹하기만 하다. 그렇다보니 다른 소설같으면 잔인한 살육전에 눈쌀이 찌푸려지기도 하련만, 이 소설은 독자인 나마저도 냉정하게 이 사건을 바라보게 만들었달까.  

뒤에 실린 두편의 단편은 조르즈 시므농의 작품이다. 램브란트의 초상은 예전에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나서 무척이나 반가웠던 작품이다. 다른 한 편인 살인자는 파리로 건너온 프로 범죄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그 사람의 정체를 알고 깜짝 놀랐던 작품이기도 하다.

『피의 수확』은 확실히 요즘 내가 읽는 미스터리 소설과는 느낌이 천양지차이다. 그래서 더욱 흥미로웠달까. 요즘 미스터리 소설중 탐정이 등장하는 소설은 대부분 트릭과 동기라는 것에 집중하여 씌어진 소설이 많지만,『피의 수확』은 확실히 인간을 향한,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묘사한 소설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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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30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드보일드라는 예전 책들은 요즘의 묻지마범죄스타일의 책보다는 등장인물들의 폼생폼사인듯 싶습니다^^

스즈야 2010-08-31 20:58   좋아요 0 | URL
음.. 그런 면이 있기는 해요. 여기에 등장하는 탐정도 볼일 끝났으면 재깍 돌아갔으면 되었을텐데.. 굳이 퍼슨빌에서 일어난 사건에 개입을 하거든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