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일러복과 기관총
아카자와 지로 지음, 이선희 옮김 / 이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요근래에 나온 작품 중 내 시선을 끄는 작품이 몇가지 있다. 그중 삼색 고양이 홈즈 시리즈와 하야카와家 시리즈에 큰 관심을 가진 나는 아카가와 지로란 작가에 주목하게 되었고, 시리즈를 먼저 읽기 전에 다른 작품을 하나 읽어 보고 싶어 선택한 작품이 바로 이 세일러복과 기관총이란 작품이었다. 절대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의 위화감때문일까, 그래서 더 이 작품에 끌리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17세의 여고생 호시 이즈미. 아버지의 갑작스런 사고사이후 이즈미의 평온한 일상은 갑작스레 뒤바뀌게 된다. 송사리파라는 약소 야쿠자 조직의 조직원들이 찾아와 이즈미를 자신들의 두목으로 모시겠단다. 이건, 자고 일어났더니 세상이 완전히 달라져버렸어요, 랄까. 당연히 이즈미 입장에서는 그 제안을 수락할 수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자신의 거절에 크게 실망하는 그들을 보면서, 이즈미는 송사리파의 두목이 되기로 한다.

프롤로그 부분부터 기묘하게 웃기더니, 본문으로 들어가면서 스토리는 황당할 정도로 희한하게 진행된다. 평범한 여고생이 갑자기 야쿠자 두목이라니!? 하지만, 읽으면 읽을 수록 묘한 매력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묘미일지도 모르겠다. 이즈미를 두목으로 모시는 송사리파의 의리파 야쿠자들에, 여자를 무지하게 밝히는 변태 야쿠자에,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반드시 나타난다 구로키,  라는 컨셉을 가진듯한 형사에, 송사리파의 세력 확장으로 골이 난 야쿠자 조직의 두목에, 뭐라 감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굳이 설명하라면 지독한 새디스트 고문파 야쿠자 두목까지 어른들의 캐릭터만 해도 독특한 사람들뿐인데, 이즈미의 학교 친구들이자 이즈미의 팬클럽 회원인 남학생 세명의 캐릭터도 절대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책은 이즈미가 주인공인만큼 이즈미의 캐릭터가 역시 최고다. 17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단있고, 용감하며 머리도 좋다. 또한 야쿠자의 두목으로 다른 야쿠자와 거래를 한다거나 그에 대항하고, 고문에도 맞설 정도로 꽤나 쎈(?)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뜻에 모두 맡기겠어요~~라든 등의 순정만화 캐릭터와는 다른 멋진 여학생이랄까. 그래도 좀 무모한 면이 있기는 하다. (그런 부분에선 좀 걱정이 되기도 했다.)

독특한 캐릭터들의 향연에 벌어지는 사건도 정말 정신없이 몰아친다. 정신줄 놓으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라고 말하듯 사건은 폭죽터지듯 일어난다. 가볍고 유쾌한 문체와 캐릭터들과는 달리 일어나는 사건도 잔혹하다. 이즈미가 송사리파 두목으로 취임하는 날엔 기관총 세례를 받지를 않나, 돌아가신 아버지는 마약 거래상이란 의혹을 받지를 않나, 살고 있는 맨션은 아수라장이 되고, 이즈미를 보호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는 여자도 등장하는 등 이즈미의 주변은 순식간에 사건사고 속으로 휩쓸려 들어가게 된다. 

웃기면서도 잔혹하고 유쾌하면서도 뭔가 씁쓸하달까. 어두운 어른들의 세계를 너무 일찍,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 버린 이즈미. 그러나 이즈미는 그런 상황을 두려워하고 회피하기 보다는 돌파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17세 이즈미의 야쿠자 두목 입문기이자, 성장소설이며, 미스터리 소설인 세일러복과 기관총은 가볍고 산뜻하면서도 솔직담백하다. 그리고 결말 역시 후줄근하지 않고, 결국 한방 먹인다고나 할까. 1976년에 데뷔해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수만 해도 무려 450편 이상에 달한다는 아카가와 지로. 그의 다른 작품은 또 어떤 재미와 자극을 안겨줄지 무척이나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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