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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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 소식을 보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늘 평균 이상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이다 보니 늘 기대가 먼저 앞선다. 섬뜩한 제목과 나를 응시하는 듯한 눈이 그려진 표지를 보면서 기대는 하늘 높은줄 모르고 치솟아 오르기만 했다.

한 여성의 교통 사고 장면으로 시작되는 소설의 첫부분. 그 사고 정황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묘사되어 처음부터 조금 긴장했다.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는 자신의 사고, 그리고 그녀의 한맺힌 한 마디의 말...
시작부터 너무 강렬해서 난 금세 책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흥미로운 이야기에 한 번 잡은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사고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바텐더 아메무라 신스케는 묘한 손님을 맞게 된다. 아주 늦은 밤, 아무도 없는 바에 찾아온 손님. 그 손님과의 대화가 끝나고, 퇴근하는 순간 신스케는 둔기로 누군가에게 공격을 당해 쓰러진다. 위험한 고비를 넘기고 병원에서 깨어난 순간, 신스케는 자신의 일부 기억이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된다. 그것은 바로 1년 전에 발생했던 그 교통 사고에 대한 것이었다.

잃어버린 기억에 혼란스러워 하는 신스케는 지인들을 만나면서 그 사건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왜 그날의 기억만이 사라진 것일까. 그러던 중 그는 자신을 공격한 사람이 1년전 발생한 교통사고의 피해자의 유족이란 걸 알게 된다. 정황을 조사해 보니 자신이 피해자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왜 그는 신스케만을 공격한 것일까.
신스케가 조사를 할수록 자꾸만 이상한 일들이 드러난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 신스케에게 알려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도대체 그날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때 신스케의 앞에 나타난 루리코란 여자. 신스케는 지금 동거하고 있는 여성이 있지만 금세 루리코에게 빠져든다. 그리고, 신스케는 그의 앞에 점점 드러나는 진실에 경악하게 된다.

초중반부까지는 몰입도가 높았다. 하지만 뒤로 갈수록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 하는 한숨 섞인 말이 내 입에서 자꾸만 흘러나왔다. 루리코의 정체를 파고 들면서 혹시 정말 그녀는 유령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책 띠지에 나와 있는대로 호러 미스터리가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가 점점 드러나면서 혼란스러워졌다. 호러물에서 SF물로 바뀌는 듯하다가 결국 영혼의 빙의라는 것으로 흘러가는 스토리 전개에 이거 정말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책이 맞아, 라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공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매사 똑부러지는 스토리 전개를 보여줬다. 그런데, 이런 난감한 이야기라니. 루리코가 '그녀'가 되게 된 것이 빙의란 것이 아니라 커다란 죄책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면 억지로 납득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노골적인 성애 묘사는 차치하더라도(사실 난 그것도 별로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묘사할 필요가 있었나?), 그녀가 신스케에게 한 행동이 전혀 이해가 안된다. 그녀의 입장에서 신스케가 사고의 가장 큰 원인 제공자라고 생각한다면, 신스케에게 그런 행동을 절대 하지 못할 것 같은데 말이다. 

미나에의 남편 레이지의 자살도 의문스럽고, 형사인 고즈카가 죽은 상황도 납득이 안된다. 게다가 에지마의 죽음도 납득이 안된다. 그녀의 눈에서 자신의 죄책감을 느꼈다면 레이지의 자살이나 에지마의 죽음은 억지로라도 납득할 수 있지만, 그녀가 고즈카를 죽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루리코는 그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그녀는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이 책이 단점만이 부각되는 책은 아니다. 교통사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을 보여줌으로서 사회파 추리소설의 면을 약간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중반부까지의 스토리 몰입도는 높은 편이며, 독특한 소재를 사용했다는 것도 인정해줄만하다. 하지만 왠지 남의 옷을 억지로 입은 듯한 이 위화감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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