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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합
타지마 토시유키 지음, 김미령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흑백합이라.. 제목 자체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진다.
백합이라고 하면 하얀색의 깨끗한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꽃인데, 거기에 검은색이라니..
도대체 흑백합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소설은 1952년의 여름과 그보다 10여년 앞선 시대의 이야기를 동시에 보여준다. 1952년의 여름은 도쿄에 살다 여름방학을 롯코에서 보내게 된 스스무와 카즈히코, 카오루를 주인공으로 한다면 다른 파트는 그들의 부모와 관련된 과거의 이야기이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하고, 과거의 일이 현재에 까지 이르게 된다는 설정을 보면서, 혹시 어른들이 과거에 청산하지 못했던 일에 대해 아이들이 그 댓가를 치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미스터리나 추리 소설등을 보면 그런 구조를 가진 소설이 꽤 많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읽으면서 왜 선대의 죄로 인해 죄없는 후세들이 댓가를 치러야하는지에 대해 안좋은 감정을 가지게 된 나로서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전전긍긍했다. 제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며...
스스무와 카즈히코, 카오루의 이야기는 황순원의 소나기를 생각나게 한다. 물론 카오루가 소나가에 나오는 소녀처럼 불치의 병을 앓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분위기가 소나기를 생각나게 했달까. 순수하고 풋풋한 첫사랑, 그리고 자연과 벗삼아 뛰노는 아이들. 순수함과 더불어 청량감이 느껴지는 부분이 아이들이 나오는 파트였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야기로 들어가면서 일은 묘하게 바뀌어 간다. 물론 어른들의 이야기도 처음에는 그저 평범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모든 것이 어디에선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미묘한 복선들은 꼼꼼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냥 넘겨버릴 수도 있을 정도로 잘 드러나지 않지만, 그것들은 결국 모두 이어져 있었다. 게다가 과거의 일로만 연결된 것이 아니라 현재까지 연결되는데, 그것이 또한 이 책의 재미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중에는 등장인물 계보를 그려 볼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른들의 세계는 복잡해져 간다. 왜 이렇게 연결된 인물이 많은거야! 당시에 존재하던 사람들이 이들뿐이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런게 또한 매력적인 부분이다. 나중에 그 흐름을 곰곰히 생각해 보면 전혀 억지스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한적하고 평화롭기 그지없는 시골 마을.
그러나 그 이면에 감춰진 것은 어른들의 이기심과 어두운 이면들이었다.
특히 이 소설은 결말 부분에 이르러 단 한문장으로 모든 판도를 뒤집어 놓는다. 독자들의 생각의 맹점을 사정없이 찔러 들어오기 때문이다. 나역시, 그 부분에 이르렀을때 누군가 머리를 세게 친듯 멍해졌지만, 곧바로 행복한 웃음이 지어졌다. 와우, 이 것이 이 책의 숨겨진 마지막 반전이었구나! 와우, 정말 깔끔한 정리야!
다해서 300페이지가 되지 않는 비교적 적은 분량의 소설이지만, 스토리의 흐름이나 캐릭터들의 개연성 또한 나무랄데가 없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 어디에나 존재할 법한 등장인물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이 작품에 있어 현실감을 더욱 많이 부여해준다. 이 책으로 처음 국내에 소개된 작가 타지마 토시유키, 그의 다른 작품도 무척이나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