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의 심장 애장판
하기오 모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하기오 모토의 토마의 심장을 읽으며 문득 몇 년전에 보았던 한 애니메이션이 떠올랐다. 그건 바로 타케미야 케이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바람과 나무의 시란 작품이었다. 뭐랄까, 그림체가 비슷하단 그런 느낌이었고, 역시 기숙사 룸메이트와의 여러 가지 관계를 그리고 있는 작품이어서 많이 닮은 느낌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내용이 제대로 기억나진 않지만, 단지 BL물로 봐야 하는 것이 아니라 소년들의 성장과 사랑을 담고 있는 성장 드라마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토마의 심장 역시도 단순한 BL물이라기 보다는 소년기의 어둠과 절망,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부정 외에도 새로운 희망과 사랑, 그리고 우정을 그린 드라마와 같은 작품이었다. 요즘의 BL물과는 조금 성향이 다른 부분이 있는 타케미야 케이코와 하기오 모토의 작품은 쥬네 계열로 분류된다. 쥬네는 BL이나 야오이란 단어가 등장하기 전에 나온 남성 동성애물을 포괄하던 개념으로 연재된 잡지의 이름을 따서 쥬네라고 하는데, 음울하고 암울하지만 스토리가 탄탄하고 심리 묘사가 섬세한 작품들이다.

독일의 한 김나지움. 그곳의 소년들은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로 한채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서로에 대해 동경과도 비슷한 감정을 가지게 되거나 상대를 한 사람의 존재로서 사랑하는 경우도 생겨난다. 아마도 공학이 아닌 여고나 남고를 다닌 우리들이라면 그런 감정이 어떤 것인지 대충 짐작은 간다. 어른의 사랑보다는 순수하고 깨끗한 열정과도 비슷한 감정이랄까.

주인공 유리는 만사 완벽하고, 친절하며 우수한 학생이지만, 자신의 신앙에 대한 흔들림, 그리고 토마 베르나의 죽음으로 인한 심적 고통, 그리고 토마와 꼭 닮은 전학생 에릭에 대한 극한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모든 것은 그의 내부로 향하고 있고, 그것은 그를 계속 상처입히고 있다. 또한 아버지가 남유럽인과의 혼혈이란 것때문에 할머니에게 차별과 미움을 받고 있는 등, 그의 마음은 어느 순간부터 어둡고 차갑게 닫혀 있다. 

에릭은 유리에게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토마 베르나와 꼭 닮은 인물로 어머니 마리에에 대한 동경과 사랑을 마치 이성에 대한 것인양 집착하고 있다. 순수하고 밝지만, 자신의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며, 때로는 발작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 가장 많은 심적인 성장을 보인 것이 에릭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타인을 받아 들이고, 타인을 포용하며, 사랑이란 것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캐릭터라고 할까.

오스카는 학원장의 친아들이지만 그 사실을 마음속에 묻어 두고 있다. 그러나 학원장에 대한 감정은 분노나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그에게서 인정받고 싶어하는 마음도 있다. 또한 오스카는 유리에 대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그의 마음이 치유되고 자신에게 열리기를 소망하고 있다. 하지만 오스카는 기다릴뿐 적극적인 태도는 취하지 않는다. 오스카는 무척 마음에 든 등장인물 중 하나였지만, 보기보다 우유뷰단하고 소극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 안타까웠다. 겉으로는 대범한 척하고 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두려워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기오 모토의 토마의 심장은 동성애를 소재로 사용하고 있지만, 성적 관계에 중점을 두는 야오이나 남성 동성애물을 포괄하는 개념인 BL과는 달리 섬세한 심리 묘사와 드라마같은 스토리 구성이 압도적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믿음을 져버리고 날개 잃은 천사, 그리고 학생들중 유일하게 자신만이 유다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하고 자신은 누군가에 사랑받을 가치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버린 유리의 섬세한 심리 묘사가 애틋할 정도이다. 또한 어머니가 자신을 의지한다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자신이 어머니를 구속하고 어머니를 의지했다는 걸 어머니의 사후 깨닫게 된 에릭 역시 사랑이란 집착이나 의존이 아니라 상대를 마음 깊이 포용하는 것이란 걸 조금씩 깨닫고 변하게 된다.

청소년기의 예민하며 위태로운 순간을 한 편의 드라마처럼 풀어낸 토마의 심장. 유리가 토마가 죽음이란 수단을 취하면서까지 그에게 전해주려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 순간, 오싹할 정도로의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어둠이 깊을수록 그 반대쪽에 있는 빛은 더욱더 강렬하다. 긴 어둠의 터널을 빠져 나와 새로운 빛속으로 걸어들어간 유리. 토마의 심장은 유리의 심장이 되었고, 토마의 날개는 유리의 날개가 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