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나를 만나는 미술관 - 그림이 먼저 알아차리는 24가지 감정 이야기
김병수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1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순전히 좋아서 하는 일들, 이런 걸 취미라고 하죠.
그림을 봐요. 전시회나 미술관을 가서 직접 작품들을 감상하면 좋겠지만 대부분 그림책이나 화보집을 보고 있어요. 가만히 보고 있는, 그 고요한 시간이 힐링이 되더라고요. 나만의 공간에는, 비록 인쇄된 그림이지만 좋아하는 그림들이 걸려 있어요. 그림은, 마치 따사로운 오후 햇살 같아서 울적하고 축축해진 마음을 툭 널어놓으면 어느새 개운하게 말려주네요. 그냥 툭, 그게 내 마음을 대하는 태도였는데 이 책을 보면서 약간의 섬세함과 다정함을 배웠네요.
《나를 만나는 미술관》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원장님의 '내면을 위한 그림 처방전'이라고 하네요.
"그림은 언어의 그물에 걸리지 않는 것을 붙들어 눈앞으로 가져옵니다.성급히 이해하려 들지 않고 함께 머물다 보면 미술은 침묵으로 말합니다.
존경은 숭배가 아니라 반복을 견디는 인내에서 피어나고, 열정은 소유하는 게 아니고 깨닫는 것이며, 모순된 감정은 혼란이 아니라 마음의 자연스러운 상태이고, 허무의 바닥에 얇게 깔린 삶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게 하며, 고통은 회피가 아니라 폭풍우 속으로 들어가라는 용기라고 가르쳐 줍니다. 미술을 통해 마음을 배우고, 마음으로 미술을 읽을 수 있습니다." (7p)
이 책은 미술관과 진료실 사이, 그 어디쯤을 거닐며 자신을 만나는 길을 안내하고 있어요. 저자는 미술이 내면을 비추는 그림이지만 그것이 자기의 본래 얼굴이 아니라 자기이기를 바라는 얼굴을 비추는 거라고 이야기하네요. 그림 속에 자신을 투사하여 불완전한 얼굴을 재구성하고, 그 안에서 은밀히 품고 있던 소망을 확인하는 것,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는 것이 심리치료의 궁극적인 목표라는 거예요. 우리는 미술 관람자처럼 '나를 만나는 미술관'으로 입장하면 돼요. 저자가 우리를 위해 준비한 작품들은 모두 스물네 가지의 감정을 담고 있어요. 존경, 열정, 다채로움, 고통, 낙관성, 무의미, 재미, 허무, 사랑, 실존, 자괴감, 자기애, 불안, 죄책감, 애도, 우울, 부러움, 순수, 행복, 자존감, 자연애, 정체감, 미지감, 자기가치감이라는 주제를 유명 화가들의 작품과 함께 하나씩 깊이 있게 들여다보고 있어요.
영화 <엑상프로방스의 세잔> 포스트 (2015)로 시작하여 폴 세잔의 <생 빅투아르 산>, 마크 로스크의 <무제>,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 항구를 나서는 증기선> 등등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데, 이 중에서 살바토레 코콜루토의 <그린>이 인상적이네요. 이 작품을 그린 화가의 설명에 따르면, 작품은 크지 않지만 완성하는 데까지 3년 정도 걸렸는데, 겉으로 보면 전체적으로 녹색의 물결과 위아래로 흐르는 파랑으로 단순하지만 그 아래에는 수십 장의 캔버스와 그 위에 칠해진 색깔이 퇴적층처럼 쌓여 있다고 하네요. 한 장을 그린 뒤에 물감이 다 마르면, 그 위에 또 한 장을 그려 붙이고, 그것이 마르면 또 색찰하고 다시 그 위에 붙이면서 계속 이 작업을 반복하다 보니 3년 넘는 시간이 걸린 거예요. 실제로 이 그림을 옆에서 보면 그 두께가 5cm가 넘는다고 해요. 흘러가는 시간을 캔버스에 붙잡아 놓듯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그림들이 입체감 있게 표현되어, 사진으로도 그 느낌이 전달된 것 같아요. 이런 작품 앞에 서면 묵묵히 제 길을 간 이의 단단한 자존감이 느껴진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네요. 자존감을 높여보겠다고 자기 마음속을 파고드는 건 별 효과가 없고, 몸을 써야 된다는 거예요. 꼭 거창한 일이 아니더라도 자신에게 특별한 무엇을 향해 온몸으로 다가갈 때 자존감도 자연스럽게 높아지는 법이라고, 결국 무엇을 하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느끼느냐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요. 자신의 고유한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어떠한 시련에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어요. 그림으로 만나는 감정의 언어들을 통해 나 자신을 괴롭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더욱 단단해질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네요. 무엇보다도 우리 모두는 각자의 방식으로 위대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