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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에게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 - 그림책 속에서 서로 연결되는 마법 같은 순간
조숙경 지음 / 예미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엄마는 너를 배 속에 품었을 때부터 그림책을 조금씩 사모으기 시작했어.
네가 태어나면 같이 볼 그림책들. 그땐 형편이 넉넉지 않아 책 한 권도 얼마나 신중하게 골랐는지 몰라. ··· 자라면서 넌 그림책이 아닌 진짜 세상으로 나아갔고 엄마는 아직 그림책 세상에 머물러 있어. 너와 같이 본 그림책 덕분에 그림책 작가가 되었잖아." (6-7p)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책이에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에게 들려주는 그림책 이야기》는 그림책 작가 조숙경 작가님의 책이에요.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던 시간들이 떠올라 슬며시 미소짓게 되었네요. 어찌보면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자녀를 키우는 모든 이들에겐 우리 이야기라고 느껴질 거예요. 무릎에 앉혀 놓고 그림책을 읽어주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스무 살이 된 딸을 바라보며 나는 무슨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까요. 저자는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딸을 위해서 어린 시절 딸이 사랑했던 그림책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힘과 용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이 책을 쓰게 되었대요. 딸에게 보내는 편지이자 스무 살이 된 모든 이들을 위한 그림책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수많은 그림책들 가운데 유독 아이가 좋아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어주는 책이 있어요. 무엇이 그렇게 좋은 건지, 읽다 보면 그 마음이 전해져서 덩달아 행복해지더라고요. 물론 지칠 때도 있어요. 계속 또 읽어달라고 할 때마다 "그만!"을 외쳐야 하는 순간들, 그때는 너무 힘들었는데 돌아보니 다시 오지 않을 소중한 순간이었구나 싶네요. 아이와 함께 본 그림책들을 고이 잘 보관하고 있다가 최근 정리를 했는데, 그림책들마다 추억이 묻어 있더라고요. 상당수는 도저히 이별할 수 없다고 해서 도로 책장에 꽂혀졌네요. 가끔 그림책을 펼쳐보는데 신기하게 나 자신에게 읽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보면 그림책 자체가 마법 같기도 해요. 여기에 소개된 그림책들과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소소한 일상 속 행복과 다친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 자신의 길을 나설 수 있는 용기를 주네요. 한때 아이였던 어른들, 여전히 마음 속에 아이를 품고 있는 어른들에게 그림책이 지닌 놀라운 힘을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림책은 우리 모두를 위한 책이라고요.
"예전에 엄마는 행복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너를 낳고 키우며 작고 소소한 순간이 주는 행복을 알게 되었어. 네가 좋아했던 그림책 《넬리의 집》 (클라스 베르블랑크 글·그림, 느림보)에도 그런 행복이 담겨 있었어. 넬리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비 한 방울 떨어지지 않는 곳에 커다랗고 멋진 집을 지었거든. 그런데 집 안을 둘러보던 제비가 여기서는 숲이 안 보인다고 하지 뭐야. 넬리는 큰 벽을 하나 허물고 숲을 보게 됐어. 산이 안 보인다는 곰, 연못이 안 보인다는 오리, 목장이 안 보인다는 소를 위해 넬리는 벽을 계속 허물어. 결국 넬리의 집은 문과 지붕만 남고 말아. 친구들이 모두 모이고, 넬리는 마지막으로 문짝까지 떼어내 불을 피워. 지붕만 남은 집에서 다 함께 잠이 들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지. ··· 엄마는 읽으면서 행복은 완벽한 집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는 순간에 찾아온다는 것을 알았어. 넬리의 집이 점점 사라져 지붕만 남게 되었지만, 그 자리에 숲과 산, 연못과 목장이 생기고, 친구들과 함께였잖아." (100-103p)
"엄마가 마음이 허전할 때 펼쳐 보는 책이 하나 있어. 《벤지의 선물》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두산동아) 이라는 책이야. 그 책엔 털이 수북한 양, 벤지가 나와. 뚱뚱하고 먹보라고 놀림받던 벤지, 항상 노력하지만 늘 실수투성이에, 친구들에게 인정받지 못해. 하지만 마지막에 친구들은 벤지의 털로 만든 따뜻한 스웨터를 입고 나서야 알게 돼. 벤지가 얼마나 좋은 양이었는지를···. 살다 보면 오해도 받고, 비난을 받거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꾸 실수할 때가 있어. 아무개 씨는 별을 만들다 실수하더라도 버리지 않아. 작은 파란 상자에 잘 보관하고, '실수 별 상자'라고 다정하게 이름까지 붙여 주지. 네 마음에다 '실수 별 상자'를 한번 만들어 보면 어떨까? 지금 할 수 있는 걸 모두 다 했다면, 후회하고 자책하는 대신 실수를 받아들이고 가만 기다리는 거야.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기도 하지만, 진심은 언젠가 통하더라." (214-215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