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 - 바다가 내게 가르쳐 준 것들
스티븐 캘러핸 지음, 남문희 옮김 / 황금부엉이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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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 표류 76일째, 극적으로 구조된 한 남자의 실화다. 이 아찔한 모험은 16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까지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망망대해 구명선에 의지하여 오로지 살기 위해 투쟁하는 모습은 흡사 우리 인생과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가 경험한 극도의 굶주림과 갈증은 최악의 상황이다. 아무도 없는 세상에 홀로 살아남는다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까?

바다에 떠다니는 것은 죄다 일종의 섬이다. (125p)

누군가에는 실질적인 경험이, 경험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지극히 철학적인 명제로 다가오는 것 같다. 난파당한 뒤 작은 구명선을 의지한 채 구조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면 절망감과 분노로 삶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명한 그는 최대한의 이성을 끌어모아 중요한 진실을 깨닫는다. 넓은 바다 위에서 작은 구명선을 배들이 발견하기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그들이 왜 자길 발견하지 못했냐고 원망한들 소용없는 일이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 너는 최선을 다할 수 있어.

이렇게 중얼거리며 좌절감을 달랬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를 구조하기 위해 타인들에게

의지할 수는 없다. 나 스스로 나를 구조해야만 한다. (136p)

그는 바다의 자유라는 유혹에 이끌려 감히 바다를 향해 나섰지만 바다는 결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바다는 인간적인 감정과는 무관하게 수많은 생물들을 포용하면서도 때론 거칠게 내몰기도 한다. 그는 자신이 직접 제작한 나폴레옹 솔로 호가 험난한 대서양을 건너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준비하고 노력했으니까.

바다를 그토록 사랑한 그였지만 표류하면서는 왜 하필 나야? 혹은 카나리아 제도를 떠나지 않았다면……’이라는 부질없는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살고자 하는 의지와 벗어나고픈 충동은 그에게는 삶의 투쟁이면서 고행하는 자의 번뇌와도 같다.

인간의 필요와 욕구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생애 처음으로 절감했다.

……궁핍한 생활은 참으로 기묘하고도 소중한 풍요를 내게 선물했다. (171p)

인간의 본성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은 풍요로울 때는 결코 만족을 모른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빼앗긴 뒤에야 지금 가진 작은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이다. 이 소중한 삶의 지혜를 영원히 간직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깨달음도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다. 그의 표류기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이들에게 읽혀지는 것은 그의 선명한 깨달음의 순간을 되살리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바다에 비유하지만 실제로 바다를 표류하면서 인생의 혹독한 시험을 통과한 스티븐 캘러핸처럼 교훈을 주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인생은 홀로서기다. 끊임없이 살기 위해 몸부림 치며 위대한 자연과 신 앞에 겸손함을 배운다. 우리가 스스로를 살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저 최선을 다하며 견디는 것이다.

비록 운명의 선택을 기다리는 것이 인간의 몫일지라도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다가 가르쳐 준 진실이 아닐까?

또한 그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부모님과 형은 포기하지 않고 구조 활동을 펼쳤다고 한다. 다들 살아남기 힘들다고 포기해도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는 가족이 있다는 건 인생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삶은 모순투성이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목적지를 향해 쾌속 전진할 수 있어 기쁜 반면, 몸이 젖고 추워서 오들오들 떨어야 하고 난파의 두려움에 시달려야 한다. 바람이 잔잔해지면 몸이 마르고 상처가 아물며 물고기도 더 쉽게 잡히지만, 표류 기간이 연장되고 도중에 상어를 만날 위험도 커진다…… 나쁜가 아니면 더 나쁜가, 불편한가 아니면 좀 더 불편한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1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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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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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님과 청구회는 어떤 인연이 있었을까? 청구회는 무슨 단체 이름일까?

막연히 이름만을 보고 뜻을 같이 하던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추측했다. 실제로 중앙정보부에서 심문 받을 때, 청구회의 정체와 회원의 명단을 대라는 추궁을 당했다고 한다.

 

청구회 노래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어깨동무 동무야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밟아도 솟아나는 보리 싹처럼

우리는 주먹 쥐고 힘차게 자란다.

배우며 일하는 젊은 용사들아

동트는 새 아침 태양보다 빛나게

나가자 힘차게 청구용사들.

 

이 노래 가사 속에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가?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고,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존재인가 보다.

신영복님을 알게 된 것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란 책을 읽으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왜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는 깊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정치범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20년 간의 옥살이를 했다는 사실만을 알고 있다.

이제 와서 ?라는 물음은 부질없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본인은 알고 있을 진실 말이다.

이 책은 1966년 이른 봄날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청구회의 정체는 영화 속 기막힌 반전처럼 드러난다. 아니, 반전이라고 느낀 것이 괜히 멋쩍은 기분이 든다. 색안경 낀 사람 중 하나가 된 듯하다. 빨갱이로 낙인 찍힌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온통 빨갛게 보이는 것처럼.

문화동에 사는 여섯 명의 꼬마들, 그 아이들은 자칭 독수리 용사들이다. 귀엽게 느껴지는 독수리 용사들이 어떤 이들에게는 살벌한 용사로 느껴질 수도 있다니 착잡한 기분이 든다. 이 모든 것이 분단된 조국을 가진 우리만의 비극인지도 모른다.

<청구회 추억>이 다른 어떤 이의 추억이었다면 흐믓한 미소를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섯 명의 꼬마들을 떠올리면 유쾌하고 기특하니까. 각자 어려운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사는 그 아이들은 정말 착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

이 세상이 청구용사들을 바로 보지 못하는데 무엇을 더 기대하겠는가?

청구회 일원이던 한 명의 어른은 이 모든 추억을 감옥 마룻바닥에 엎드려 기록하였다. 청구회 어린이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난 그 부분이 궁금하다.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되었지만 그들 나름의 믿음으로 지켜낸 청구회였는데, 그 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중단되고 말았다는 것이 왠지 아쉽기만 하다. 가난한 시절의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 주었던 사람은 감옥에 갇혀 그 아이들을 떠올리며 희망을 찾은 것이다.

누가 누구에게 희망이 되었건, 1968년 청구회는 사라졌다.

그 동안 잊혀졌던 청구회가 아련한 추억에서 이제는 한 권의 책으로 재탄생 되었다.

그들의 추억 중에서 특히 서오릉에서 아이들이 준 진달래 한 묶음이 퍽 인상적이다. 수줍게 꽃을 건네는 아이들의 순수함은 그 자체만으로도 진실되고 거룩한 상징이다.

또한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이 주는 느낌처럼 화사한 봄날이 문득 애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출간 20주년을 맞는 올해, <청구회 추억>은 영어로 동시에 번역된 글이 함께 실려 있다. 따뜻한 그림과 글을 우리뿐 아니라 외국인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한 점은 멋진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오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은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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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와 나 - 온 가족이 함께 읽는
존 그로건 지음, 황소연 옮김, 김서진 그림 / 청림아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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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썽쟁이 강아지를 키운다는 건 웬만한 애정이 아니면 힘든 일이다.

래브라도 레트리버 종인 말리는 이제까지 보아 온 강아지 중 최고 같다. 말썽도 이 정도면 수준급이다. 말리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

저자 존 그로건과 말리의 이야기는 한 편의 따뜻한 가족 영화를 본 느낌이다. 만약 말리가 존 그로건이 아닌 나에게 왔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감당하기 힘들어서 함께 지내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들 가족들은 말리를 따뜻하게 감싸주며 가족으로 받아들였다. 물론 그들도 험난한 과정이 있었지만 끝까지 말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에서 개를 너무나 예뻐하는 사람들을 보면 좀 유별난 것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 눈에는 애완동물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가족이니까 당연한 애정이었구나 싶다.

말리와 그들 가족이 특별한 건,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환영 받지 못할 말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힘은 바로 가족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외식 소동이 벌어진 얼마 뒤, 나는 도서관에서 바바라 우드하우스가 쓴 <나쁜 개는 없다>라는 책을 발견했다. 글쓴이는 개가 버릇이 없다면 그것은 개의 잘못이 아니라 올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사람의 잘못이라고 했다. (121p)

이 부분을 읽으면서 혼자 웃었다. 어쩜 육아서와 똑같을까?하고 말이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문제부모가 있을 뿐이다.라는 식으로. 나쁜 개가 없는 건 확실한 것 같다. 나쁘다는 기준은 사람이 정한 거니까. 개가 버릇이 없다거나 말썽을 심하게 부리는 건 사람들에게 불편한 일이지, 개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말리가 저지른 숱한 말썽들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역시 남의 일이라 태평하게 웃을 수 있는 건가?

사람이 한 살을 먹는 동안 개들은 일곱 살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처음에 강아지를 키울 때는 자녀를 돌보듯이, 그 뒤에 나이가 들면 노인을 돌보듯 해야 되는 것 같다. 사람보다 빠르게 인생을 사는 개들을 보며 인생을 배우게 된다. 마음을 나누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개들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해준다.

친한 사람이 기르는 개도 사람 나이로 치면 할머니 수준인데 어찌나 지극정성으로 돌보는지 감탄한 적이 있다. 먹기가 힘들다고 죽을 만들어 떠 먹이고, 숨쉬기 힘들다고 산소통을 설치해 놓았다. 기운도 없고 힘들어하기는 해도 잘 견뎌내는 모습을 보니 대견할 정도다.

개를 가족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은 <말리와 나>를 읽으면서 가슴이 뭉클할 것이다. 개를 그 정도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바로 나)도 그랬으니까.

말리네 가족들이 보여준 사랑은 보는 이들까지 따스하게 만든다.

가족이란 어떤 순간에도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것.

세상에 가족이 있기에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리라.

말리와 함께 웃으며 즐거웠던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할 가족들이 있기에 말리는 결코 외롭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한, 아무리 힘들어도 끄떡없다.

말리 덕분에 소중한 가족의 사랑을 다시금 느껴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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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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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한 권의 책과 함께 했다. 책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아는 혜윤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이번에는 그녀가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 11명과 그들의 책 이야기다.

그렇다면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

문득 어린 시절, 마당에 있던 수도 펌프가 생각난다. 한 두 바가지 정도 물을 부은 뒤에 열심히 펌프질을 하면 콸콸거리며 쏟아져 나오던 물을 보는 느낌이랄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수다 떨기를 즐긴다는 그녀는 정말 책에 관한 한 화수분과 같은 입담을 지닌 것 같다. 처음 그녀의 책을 만나는 독자라면 다소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곧 익숙해질 것이다. 그녀의 몫은 책에 대해서 한 두 바가지 정도의 물을 붓는 일이 될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읽어 본 책이라면 함께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하겠지만 아니라면 멀찍이 지켜보는 수 밖에. 어쩌면 구경하는 일이 더 재미있을 수도 있으니까.

사람에 관한 인터뷰가 참 독특한 방식으로 쓰여졌단 생각이 든다.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들 삶에서 소중했던 한 권의 책을 이야기하다 보면 저절로 그 삶이 보인다. 마치 그 사람이 책 속의 일부인 듯 느껴진다. 그건 그들 모두가 진정한 독서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한 권의 책이라 할 수 있다. 인생에서 우연히 혹은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 책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그 사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묻는다면 결코 듣지 못했을 답변을, 당신의 인생에는 어떠한 책들이 있었나요?라는 물음 덕분에 듣게 된다. 우리 인생에 책이 없었다면 상상만으로도 삭막하다. 아니, 목마르다.

책에 관한 폭포수 같은 이야기들 속에서 시원한 기분이다.

<그 혹은 그녀의 책들>이 궁금하다면 맨 뒤편에 부록으로 정리되어 있다. 만약 뜬금없이 이들 책에 대해 말했다면 그리 관심을 두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네들과 달리 나는 독서가가 아니므로 읽어보지 않은 책이 더 많다. 그러나 그네들의 삶 속에서 더욱 빛나는 한 권의 책을 보니 왠지 만나보고 싶다.

특히 은희경 작가가 선택한 세 권의 책이 그렇다. 쿤데라의 <느림>과 친기즈 아이트마토프의 <백 년보다 긴 하루>,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우리 시대는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고 있으며 그래서 너무 쉽게 자신을 망각한다. 한데 나는 이 주장을 뒤집어 오히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우리 시대는 망각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며 이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속도의 악마에 탐닉하는 것  - 쿤데라의 <느림>

저자의 지혜가 끝나는 곳에서 우리의 깨달음이 시작되는 것이 독서다. 장 그르니에

“……어느 정도 허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의 독서가 정말로 자산이 되는 건 그게 현실과 맞붙으면서였죠. 은희경

 

어린 시절에 독서에 탐닉했던 적이 없던 내게, 오히려 지금이 참다운 독서를 할 때라고 말해주는 것 같다.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선 깨달음의 경지는 반드시 독서가만의 특권은 아닐 것이다. 또한 살기 위해서 책을 읽는 사람이 되었다는 공지영 작가의 말처럼 책이 주는 의미는 각자의 인생만큼 다양할 것이다.

결국 이 책을 위한 마무리는 이것이다. 이유가 무엇이 되었건 책이 있어 인생이 즐거운 사람이라면 당연히 만족할 만한 책이라고.

 

한 권의 책이 무한한 책이 되는 방법은 무엇인가? 취팽은 그 문제를 풀었다. 우리 역시 취팽의 무한히 확장되는 한 권의 책을 이해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게 있다. 책은 홀로 떨어져 있는 사물이 아니라 각 페이지가 개별적인 인간들과 맺는 무수히 많은 관계라는 것…….  (310p)

 

보르헤스는 각각의 책은 각각의 독서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 말했다. 즉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의미가 무한하다고 했다. 한 권의 책의 운명은 쓰인 시간에 결판나지 않고 오히려 앞으로 다가올 어떤 의미 부여를 기다리는 형식이라 했다. (3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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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비늘 1 - 이외수 오감소설 '환상'편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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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수 작가의 소설은 걸리는 게 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듯 어려운 것이 자연스러움이 아닐까 싶다.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무릉도원에 이른 기분이 든다.

주인공 동명이가 만난 사람들은 각자 제 몫을 다한다. 괴롭히면 괴롭히는 대로, 애정을 주면 애정을 주는 대로…… 세상에서 인연이 되어 만나는 사람들을 내 마음대로 택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대하는 마음은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동명이는 키가 작아 땅콩이란 놀림 받을 때도 있었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크고 넓은 것 같다.

세상이 된장찌개라도 된다면 당장 가스레인지에 올려놓고 아버지가 바라시는 대로 따스하게 만들어드릴 수가 있겠지만 세상은 결코 된장찌개가 아니었다. (170p)

태어난 지 이 개월 만에 어느 부잣집 문 앞에 버려져 있었다는 동명이는 작고 왜소한 외모 때문에 양부모에게 선택 받지 못한다. 여러 가지 마음의 상처를 참지 못한 동명이는 보육원을 탈출하여 세상에 나온다. 험한 세상에서 동명이를 낚아 올린 그 사람은 동명이에게 아버지가 되어준다. 생면부지 남이었던 사람도 마음을 열고 껴안으면 가족이 되는 것이다. 상처뿐인 동명이에게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하고 사랑을 준 그 사람이 왠지 고맙다.

대부분의 물고기가 알에서 깨어나자마자 부모 곁을 떠나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나는 나이를 열 살이나 더 먹은 듯한 기분에 사로잡혀 있었다. (290p)

동명이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무 간선이라 불리는 백발노인을 통해 우리는 황금물고기를 만나게 된다.

나쁜 놈이 생기지 않게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시나요.

나는 할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알고 있지.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사람들 모두가 나뿐인 놈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절로 나쁜 놈은 생기지 않게 되지.

할아버지의 대답이었다.

나뿐인 놈이라니오.

나는 할아버지의 대답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을 나뿐인 놈이라고 하지.

할아버지는 나뿐인 놈이라는 말이 변해서 나쁜 놈이라는 말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우주만물은 어떤 것이든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느니라.  (2 146p)

신비로운 황금물고기, 신선과 같은 백발노인은 썩어가는 세상을 정화시키기 위한 의지와 같다. 착하면 바보 되는 세상이라고 다들 독하게 살라고 충고하지만 세상에 독한 사람들뿐이라면 어찌 되겠는가?

주인공 동명이의 삶을 통해 희망을 본다. 인간이 지닌 탐욕은 끝이 없지만 문득 그 마음은 밑 빠진 독처럼 채울 수 없음을 깨닫게 된다.

생각에 기인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번뇌 속에 흔들리게 되고, 마음에 기인해서 인생을 살아가면 평온 속에 안주하게 되느니라. (2 162p)

세상을 낚는 것은 낚시대가 아니라 낚싯대를 드리운 낚시꾼의 마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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