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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 - 원자 단위로 보는 과학과 예술의 결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 지음, 강민지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7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너는 T, 나는 F 야."라고 말하는 건 서로 성격이 완전 다르다는 의미일 거예요.
과학과 예술 분야도 상반된 성격처럼 서로 거리가 먼 분야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두 분야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알게 됐어요. 《일상의 모든 순간이 화학으로 빛난다면》은 데보라 가르시아 베요의 책이에요. 저자는 스페인 라코루냐대학교의 첨단 과학 연구 센터CICA에서 예술에 응용할 수 있는 재료 과학을 연구하는 화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라고 하네요. 첫 장에는 '크리스티안에게'라고 적혀 있어요. 누구일까, 저자와는 어떤 관계의 사람이길래 이 책을 헌정하는 건지 궁금했는데, 첫 번째 이야기 '푸른 벨벳'에서 크리스티안과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어요. 어쩐지 낭만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기지만 이 장면 속에 두 사람은 아이들이에요. 해변의 가장자리, 젖은 모래에 엎드려 모래 언덕에 난 풀들을 바라보고 있는 크리스티안에게 다가가자, "내 옆에 엎드려 봐." (11p), 그래서 그의 곁에 몸을 낮췄고, 바람이 쓰다듬는 풀의 모습이 마치 짐승의 갈기 같았다고, 우리는 짐승의 뒤에 올라탄 듯 모래에 바짝 엎드려 대서양을 항해했노라고 이야기하네요. 그렇게 늘 둘이서만 놀던 아이들은 커서, 크리스티안은 예술가가 되었고, 저자는 과학자가 되었는데, 화학 박사 논문 주제가 정해진 날에도 크리스티안이 "저 조각상 좀 봐" (16p)라고 말하며 가리킨 것이 결정적 순간이었다는 거예요. 저자가 연구자의 길을 걷게 만든 그 조각상은 '푸른 비너스'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이브 클랭의 조각상 <S41>이며, 정확하게는 이브 클랭이 개발한 푸른 벨벳 같은 안료에 홀딱 반해서 재료 속에 숨겨진 화학의 비밀을 풀어내는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대요. 크리스티안과의 어릴 적 추억뿐만 아니라 집안 이야기와 학교에서 겪은 일들이 미술 재료와 화학으로 연결되어, 매혹적인 색채 색감으로 표현되는 예술의 세계로 안내하고 있어요.
"클라인 블루에 담긴 과학을 이해하는 일은, 비너스 조각에 담긴 복잡한 의미를 해석하는 열쇠가 된다. 클랭의 푸른 비너스처럼, 깊이 있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 그 경험은 내면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 감각은 한동안 당신의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데, 그렇게 우리는 더 많이, 더 잘 보는 방법을 배운다. 그리고 배움은 되돌아가지 않는 길이다. 클랭은 '빛낸다'는 것을 푸른색으로 표현했다. 빛낸다는 건 빛을 비추고, 색을 입히며, 숨겨진 의미를 드러내는 행위다. '빛낸다'는 그 표현은 푸른색과 어쩌면 이토록 잘 어울릴 수 있을까." (25-26p)
패션이나 예술계에서 전통적으로 사용되는 원색은 과학의 원색과 다르지만 인간 눈의 속성을 과학이 설명해주네요. 우리의 눈은 생물학적으로 세 가지 색상만 인식할 수 있고, 나머지는 마음의 눈으로 느끼는 색이라는 거예요. 휴대폰이나 TV 화면에 흰색만 띄운 뒤 돋보기로 보거나 화면에 물 몇 방울을 떨어뜨려 보면 픽셀을 들여다볼 수 있는데, 픽셀은 빨간색, 초록색, 파란색으로만 이루어져 있어요. 이 세가지 색의 빛을 조합하면, 각 색을 얼마나 섞었는지 비율에 따라 대부분의 색을 표현할 수 있는 거예요. 색은 생물학적 영역이자 우리의 마음이 세상과 만나는 지점이기에 과학과 예술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거예요. 그러니 저자의 말처럼 우리가 화학을 더 많이 알게 된다는 건 더 많은 것들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즉 우리가 볼 수 있는 세상이 훨씬 더 커진다는 의미일 거예요. 보이지 않다가 보이게 된 색처럼.
"바로크 시대부터 추상 표현주의에 이르기까지 회화 재료의 진화는 미술 운동의 진화와 관련이 있다. 과학은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때로는 전혀 새로운 발상 자체를 가능하게 하는 씨앗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과학은 구상과 창조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한 것이다." (124p)
인상주의 화가 카미유 피사로가 말했듯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평범한 곳에서 아름다운 것을 보는 사람들은 행복하다." (192p)
"호기심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영감을 찾을 수 있게 해준다. 마음이 열중하는 데 익숙해지면 머릿속이 어지러운 상태라도 일상생활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다. 그렇게 찬찬히 세상을 관찰하는 일은 내가 삶을 살아가는 유일한 방식이다. 관찰하는 것은 번잡함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세삼한 관찰의 결과는 예술, 과학, 언어를 통해 재현되고 전달된다. 주의 깊게 살펴보고 깊이 있게 사는 법을 배웠다면, 모든 사물 속에서 아이디어를 끌어낼 수 있다." (196p)
"지금도 새로운 검은색 안료와 물감이 개발되고 있으며, 과학자와 예술가가 긴밀히 협력하여 작업하고 있다. 완벽한 검은색. 빛을 100% 흡수하는 이 검은색은 예술과 과학 모두에게 매혹적인 대상이다. 아직은 찾지 못했지만, 거의 다 왔다. 현존하는 가장 짙은 검은색은 기술 회사 서리나노시스템즈에서 개발한 반타블랙이다. ... 반타블랙을 본 사람들은 너무 어두운 나머지 마치 구멍 난 것처럼,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고 묘사한다. 초점을 맞출 수도 아무런 질감을 느낄 수도 없기 때문이다." (229-230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