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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집 너스에이드
치넨 미키토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5년 7월
평점 :
환상의 파트너!!!
《이웃집 너스에이드》라는 소설이 주는 강렬한 여운을 표현하는 문장이네요.
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보다가 문득 미국 드라마 <엑스파일 THE X-FILES>에 나오는 멀더와 스컬리가 떠올랐어요. 너무 옛날 드라마라서 모르는 사람도 있을 텐데, 두 주인공의 관계를 설명하자면 오글거리는 로맨스 분위기 제로, 철저한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할 수 있어요. 신입 간호조무사 사쿠라바 미오와 괴짜 천재 외과의사 류자키 타이가의 관계가 딱 그렇거든요. 잘생기고 예쁜 미혼의 선남선녀인데 서로 이성적인 관심은 전혀 없고, 오로지 같은 목표를 향해 협조하는 관계라는 점, 근데 아슬아슬하면서도 미묘한 긴장감 속에서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짜릿함이 있다는 점에서 희대의 명작이자 전설적인 드라마로 꼽는 엑스파일의 감동을 재현해줬네요. 한마디로, 완전 재미있어요. 이 정도로 흡입력이 있는 이야기라면 영상으로 제작될 가능성이 높을 듯... 음, 역시나 작가님이 애초에 드라마 제작을 염두에 두고 집필해 2024년 일본 OTT 드라마로 방영되었네요. 사쿠라바 미오 역을 맡은 일본 배우님의 외모는 마냥 해맑고 청순한 이미지라서 제가 상상했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네요. 일본에서 인기리에 연재된 만화 '꽃보다 남자'가 동명의 드라마로 일본, 대만, 한국에서 제작되었을 때 국가별로 배우들의 분위기가 너무 달라서, 똑같은 줄거리인데도 다른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 들었던 터라, 《이웃집 너스에이드》도 한국판 드라마로 제작되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염두해둔 배우님들이 나온다면 최고의 드라마가 되지 않을까라는, 사실은 이런 상상을 할 때가 즐거워요. 이미 완성된 이야기에 숟가락을 얹는 재미, 혼자만의 캐스팅이지만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박은빈 배우님도 여리고 순수한 이미지가 강한데 '하이퍼 나이프'에서 천재 외과의사 역할을 멋지게 보여줬기 때문에, 그것과는 상반된 성격의 간호조무사 역할도 잘 해낼 것 같고, 김혜윤 배우님도 어울릴 것 같다는... 확실히 미오 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단 주인공 미오, 그녀는 작년부터 반년가량 일을 쉬다가 지난주부터 세이료 대학 의학부 부속병원 5층 병동의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어요. 첫 장면부터 주임간호사인 사다모리 에리코가 언어폭력으로 직장 내 괴롭힘, 일명 태움의 정석을 보여주고 있네요. 미오가 사다모리에게 환자분의 가래가 차서 호흡이 힘드니 얼른 가래 흡인을 해달라고 요청하자(환자의 보호자가 먼저 해달라고 했음), 매우 기분 나빠하면서, "당신이 하면 되잖아. 환자가 힘들어하고 있고 흡인이 필요하다면서요. 거기까지 알았으면 굳이 나한테 부탁하지 말고 당신이 빨랑빨랑 해 주면 되잖아. 아, 미안해요. 당신, 간호사가 아니라 간호조무사였지. 아무 자격도 없는 주제에 의료 현장을 자기네 세상인 양 휘젓고 다니는 잡역부일 뿐이잖아. 그런 까막눈이 의료 행위를 했다간 환자를 죽이고 말지도 모르겠네. (비웃으며) 알았거든, 우리 업무 방해하지 말아요." (20p) 세상에 이런 못된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어떤 직장이든 꼭 감초마냥 껴있어요. 이런 빌런 같은 인간들은 어떻게 상대하면 좋을까요. 이때, 베테랑 간호조무사이자 미오의 교육 담당이기도 한 소노다 에쓰코 씨가, "주임니임, 우리 신입 괴롭히지 마세요."라면서 부드럽게 상황을 넘기더니, 미오에게 멋진 말을 해주네요.
"별의별 말을 들었겠지만, 신경 쓰지 말아요. 의료 현장에 사실 상하관계 같은 건 없으니까. 의사도, 간호사도, 그리고 간호조무사도 동등해.
확실히 간호조무사 일은 자격증이 없어도 할 수 있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고 잡무를 처리할 뿐인 우리는 의료에 있어서는 '까막눈'일지도 모르고. 하지만 우리는 틀림없이 프로야.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는 일의 프로', 간호사가 '의사를 서포트하는 일의 프로'라면 우리는 '환자에게 다가가는 프로'란 말이지. ... 식사 수발을 들고 기저귀를 갈고, 몸을 씻기고, 검사실로 이송하는 일 따위를 담당하는 간호조무사는 환자와 보내는 시간이 의사나 간호사보다 더 길어. 환자는 우리에게 마음을 열고, 의사나 간호사에게는 할 수 없는 상담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지. 환자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의료종사자, 그게 바로 우리 간호조무사야." (21p)
속상한 마음에 눈물이 울컥할 정도로 여린 미오라고 생각했는데, 통합외과에서 히가미 교수 다음가는 위치, 넘버 투로 알려진 류자키 선생에게, "그건 옳지 않아요!" (48p)라면서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때는 깜짝 놀랐어요. 와, 반전 매력이잖아, 외유내강의 면모라니 완전 멋짐!
본격적으로 미오가 류자키 선생과 엮이는 과정이 엄청 흥미진진한 데다가 뜻밖의 사연을 통해 숨겨진 비밀들이 드러나면서 반전의 반전을 보여주니, 어찌 빠져들지 않을 수 있겠어요. 치넨 미키토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인데, 읽으면서 이미 팬이 되었네요. 작가님의 이력을 보니, 도쿄 지케이카이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내과 전문의로 일하며 집필을 병행하고 있다고 하네요. 그동안 미스터리 장르에서 신인상을 비롯해 각종 상을 수상할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작가님이네요. 한때 탐독했던 메디컬 스릴러 소설들의 작가님도 의사 출신인 걸 보면 미스터르 장르에서 전문성에 기반한 현실적인 세계관이 주는 몰입감과 섬세함이 탁월한 강점인 것 같아요. 미오와 류자키, 환상의 파트너 조합을 이번 이야기로 끝내기엔 너무 아쉬워서, 2탄이 나오기를 바랄 뿐이네요. 재미있어서 야금야금 아껴 보려고 했으나 궁금해서 빠르게 넘길 수밖에 없는 이웃집 너스에이드였네요. 무더위에 지치는 요즘, 시원한 레모네이드를 마시며 이웃집 너스에이드에 빠져 보시길.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