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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의 땅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김희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8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키메라의 땅 2》에서는 지상으로 쫓겨난 알리스 카메러를 포함한 망명객 424명의 정착기를 보여주고 있어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에서는 미래 혹은 공상 세계가 신화와 전설, 성경 속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소재들이 종종 등장해요.
키메라들의 창조주, 어머니가 된 알리스 카메러가 박쥐, 돌고래, 두더지 세 동물을 선택한 것은 하늘, 바다, 땅을 염두에 둔 것인데, 지상으로 올라와 세 종족이 각자 적응하며 경쟁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네요. 딸 오펠리는 형제처럼 함께 성장해온 헤르데스, 하데스, 포세이돈이 이끄는 세 혼종 공동체의 갈등을 가까이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우려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어요.
"세상에, 엄마, 정말 모르시겠어요? 세 공동체가 저마다 엄마가 가르쳐 준 역사를 다시 써서 자기가 옳고 세상을 지배해야 할 종은 자기들임을 입증하는 구실로 삼는다고요! 그들은 자기 존재 자체가 사피엔스의 공격에 대한 자연의 대응책이라고 받아들여요. 에어리얼은 공기의 복수를, 디거는 땅의 복수를, 노틱은 물의 복수를 한다고요······. 그들은 모든 걸 훼손한 사피엔스에게 복수하려고 경쟁하고 있어요."
"난 그렇게 믿지 않아. 그들은 생명의 상호 보완적 에너지야. 기억나지, A, D, N. 에어리얼, 디거, 노틱, 흰색, 검은색, 파란색. 각자 자기 자리와 활동 영역을 찾으려면 조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제 생각은 달라요, 시간이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에요. 혼종들은 점점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기 어려워질 거예요. ··· 각자 자기들 고유의 언어를 만들어 내고 있고, 언젠가는 서로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거예요."
"지나친 생각이야."
"가끔 보면 엄마는 정말 순진하다니까! 엄마는 자기 창조물들을 이상화한 나머지 다가올 위험을 보지 못하게 된 거예요." (35-37p)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과 바벨탑 이야기처럼 욕망의 끝에는 파국과 구원, 두 갈래의 길이 놓여 있어요. 인간들이 어리석은 선택을 할 때마다 신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한 인간의 최후는... 인간의 탄생이 신의 계획이든, 우주가 빚어낸 우연이든,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아요. 키메라들을 통해 인류의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면서, 인간은 결코 지구의 주인이었던 적이 없었음을 깨닫게 되네요. 우리는 그저 수많은 생명체들 가운데 하나였을 뿐, 멸망한 지구에서 키메라 신인류의 등장은 완전히 새로운 세상의 시작을 알리고 있네요.
"이 모든 일들은 지구의 역사에서 사소한 우여곡절에 불과해요. 결국 생명은 길을 찾을 거예요. 인류의 정신은 물질적 상태를 넘어서서, 어떤 종족에 깃들어 있든 살아남을 거예요. 사피엔스든, 노틱이든, 디거든, 에어리얼이든, 아홀로틀이든." (316-317p)
이야기 중간, 필요한 순간마다 에드몽 웰스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이 나오는데, 바로 거기에서 놀라운 솔루션을 발견했네요.
"2차 세계 대전 중 영국 공군은 독일군과의 전투 임무 수행 중 파손되거나 격추되는 폭격기 대수를 줄이고자 했다. 엔지니어들은 무사히 돌아온 비행기들의 총탄 흔적 개수와 위치를 조사하기로 했다. 그들은 장갑판을 보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고, 특히 적군의 대공포에 가장 자주 파손되는 결론을 내렸고, 특히 적군의 대공포에 가장 자주 파손되는 날개와 기체 뒤편을 점점 보강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런데 시험 기간을 거친 후 그들은 비행기 생환율이 높아지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낮아졌음을 깨달았다. 그때 에이브러햄 왈드라는 이름의 수학자가 이 수수께끼를 깊이 생각해보고 말했다. 「문제를 분석하는 당신들의 방식은 틀렸어요. 총탄 흔적이 발견되는 부위들은 가장 덜 취약한 부분입니다. 반대로 기체의 나머지 부분을 보강해야 하죠.」 다른 엔지니어들은 그 논법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는 설명했다. 「그 부위들에 총격을 당한 비행기들은 살아 돌아왔어요. 다른 곳, 특히 연료 탱크 근처(폭발이 일어남), 조종석(조종사가 있는 곳), 엔진(작동이 정지되어 추락함)에 공격이 적중한 비행기들은 반대로 귀환하지 못했죠. 그러니까 구멍이 제일 적게 난 부위들을 보강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하여 에이브러햄 왈드는 <생존자 편향>의 법칙을 입증했다. 우리가 문제 해결을 위해 조사의 바탕으로 삼는 사례들은, 이미 해결되었기에 우리에게 알려진 건들이다. 우리는 예외들을 규칙으로 받아들인다. 그런데 그 사례들은 전체적인 상황을 대표하지 않는다. 건축을 예로 들어보자. 우리는 1백 년 넘는 건물들이 오래 버텼으니 현대 건물들보다 튼튼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을 견디고 남은 건물의 수는 매우 적다. 훨씬 더 많은, 같은 시대에 건축되었으며 무너진 건물들도 모두 고려해야 한다." (90-91p)
에이브러햄 왈드가 입증한 <생존자 편향>의 법칙처럼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정확하게 분석할 줄 알아야 해요. 이대로 가다간 지구의 멸망이 아니라 인류의 멸종이라는 것, 먼 훗날 지구에서 호모 사피엔스가 사라진다면 신인류는 우리를 기억하기나 할까요. 이름에 걸맞는 지혜로운 사람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