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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
정희승 지음 / 작가의집 / 2025년 2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일본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대요.
아마 이 말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꽤 있지 않을까 싶네요. 화목하고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란 어찌나 드라마 같은지, 현실에서는 가끔 맑고 때때로 흐리거든요. 근데 누군가는 폭풍우 속에 홀로 견디기도 한다는 걸, 빛이 있는 곳에서 나고 자라지 않아도 스스로 빛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네요.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는 치열한 생존과 놀라운 치유의 여정을 담은 책이에요.
첫 장은 추천사로 시작되는데,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가 아닌 실제 겪은 일이라는 점을 저자의 주치의가 알려주고 있어요.
"사실은 땅이었어야 하는, 집이어야 하는 부모로부터 받은 끔찍한 학대는 땅에 발을 디뎌도 육지 멀미를 하게 하는 평생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안깁니다. 편안한 삶으로 걸어갈 걸음조차 집어삼켜 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녀는 심리적으로 땅 위를 편하게 걸어본 적도, 안정적인 집(가정)이라는 것이 어떻게 생긴 지도 모릅니다. 몰랐을 그녀가 바닷가에서 스스로 걷고 보이는 모든 재료를 모아 손이 헐도록 집을 멋지게 지어 올리며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울 여유도 없이 헤엄쳐야 했던 어린아이에서 멋진 어른으로 성장한 그녀가... 다시 씩씩하게 걷고 뛰었습니다." (8-9p)
자신의 불행한 가족사를 입밖으로 꺼내기도 힘든데 글로 써서 책으로 펴낸다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용기와 희망 그 자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저자는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가족이라는 가면을 쓰고 가족의 영혼을 파괴하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저의 삶의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저처럼 말하지 못하고 숨기며 살아온 상처 받은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악마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족의 가면을 쓴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의 이야기를 고백하는 이유입니다." (17p)라고 말했는데, 이것이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예요. 악마, 이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네요. 그 악마는 저자의 친부였어요. 그녀는 악마에게서 벗어나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기로 결심했고, 비로소 빛이 있는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나는 부모를 버렸습니다"라는 문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렬한 외침이자 선언으로 들렸네요. 친족 성범죄 피해자, 정신과 의사는 이들을 트라우마 생존자라고 하는데, 그만큼 그들은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응원과 지지를 받아야 해요. 아무 잘못 없는 이들이 왜 고통 속에서 숨어지내야 하나요. 저자는 괴물을 피하기만 하고 싸우지 않으면 괴물과 함께 침몰한다고, 그러니 이제 괴물과 맞서 싸우라고, 침몰하는 어두운 세계와 작별하라고, 그래야 빛이 나는 세상과 만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네요. 책을 덮으면서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가 떠올랐어요. "주님,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용서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걸 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가족이란 혈연이 아닌 사랑하는 마음으로 연결된 관계라는 것, 함께 있어 행복한 이들이 나의 가족인 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