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내가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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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한 방울의 내가》는 현호정 작가님의 소설집이에요.

책을 펼치기 전, 묘하게 번쩍이는 표지 위에 그림을 한참 바라보았네요. 붉은 동공, 속눈썹, 푸른 눈물 방울... 그리고 날아가는 새들.

어떤 이야기일지 궁금했는데, 신기하게도 처음 책표지 그림을 봤을 때의 느낌이 겹쳐져서 더욱 선명해진 그림이 보였어요. 모두 일곱 편의 단편이 있는데, 저마다 독특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네요. 나뉘어져 있지만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진 듯, 감정의 거대한 강물이 흘러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느낌인지를 설명하려면, 약간의 도움이 필요한데 각 이야기의 첫 문장을 소개하고 싶어요. "흰 새들이 언 땅에 내려앉는다." (9p) _ <라즈베르 부루 , Raspberry BorO>, "애초에 금조 청과에서 점원이 할 일은 없었다." (31p) _ <돔발의 매듭 , Dombal's oooooooooooooooooooOO>, "세상은 끝장날 힘마저 잃었음을 부정했어요." (53p)_ <~~ 물결치는 ~ 몸 ~ 떠다니는 ~ 혼 ~~, ~~ Oo ~~>, "꿈에 연필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83p)_ <연필 샌드위치 o=O Sandwich>, "이번 생의 나는 웅덩이인 모양이었다." (105p)_ <한 방울의 내가 , As O of you>, "...... 당신에게 가려구요." (136p)_ <청룡이 나르샤 , drag On blues >, "민나는 민나의 어머니보다 먼저 태어났다." (175p)_ <옥구슬 민나 , Minnah O lord> 까지 단편 제목도 한글과 영문을 같이 봐야 해요. 알파벳 소문자와 대문자의 위치,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o', 물결 (~) 표시와 수학 기호 중 등호(=)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각자 자유롭게 짐작할 수 있어요. 소설이라서 가능한 상상들, 어쩌면 소설처럼 쓰여졌지만 실은 '아직 끝나지 않은 연작 시' 같다고 느꼈어요. 시를 읽는 것 같기도 하고, 난해한 그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해서 머릿속에서 제멋대로 기억과 생각들이 쏟아졌네요. <~~ 물결치는 ~ 몸 ~ 떠다니는 ~ 혼 ~~, ~~ Oo ~~>에 나오는 부랑자와 K의 대화를 보다가 어린 시절에 혼자 상상했던 유체이탈의 느낌이 떠올랐고, <한 방울의 내가>를 읽을 때는 중학교 시절 국어시간에 친구가 나를 '물'에 빗대어 쓴 글이 생각났어요. 현호정 작가님의 소설은 감정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는 것 같아요. 미간을 찌푸리며 잔뜩 집중해서 볼 때는 하나도 안 보이다가 눈동자의 초점을 풀고 흘깃 바라볼 때 보이는 찰나의 그것, 근데 그걸 뭐라고 설명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훅 빨려들어온 공기마냥 가슴 속 어딘가에 묘한 감정을 남겼네요. <모래 위의 H , H on the O> 라는 제목의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H를 통해 현호정이라는 사람은 어떤 내면 아이를 품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게 되었네요. 어찌됐든 한 방울의 '나'를 자각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네요. 작년 5월 연극으로 올린 <한 방울의 내가> 희곡이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웅덩이 상태의 물인 '나'의 대사를 보니 소설보다 더 입체적으로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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