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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개인의 열두 달 - 한 해를 되짚어 보는 월간 뜨개 기록
엘리자베스 짐머만 지음, 서라미 옮김, 한미란 감수 / 윌스타일 / 2024년 6월
평점 :
좋아하던 마음이 어떻게 식을까요.
사람을 향한 마음은 아니고, 취미 얘기예요. 한때 뜨개질에 몰두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너무 욕심을 부렸더니 나중엔 질리게 되더라고요. 근데 시간이 흘러서 그런가, 요즘 슬슬 발동이 걸려서 새로 코바늘 세트와 실을 장만했네요. 한 땀 한 땀 뭔가를 만들어가는 뜨개의 재미를 다시 느끼고 싶어졌거든요. 누군가를 좋아하다가 그 마음이 식으면 돌이키기가 힘든데, 취미는 계절처럼 돌고 돌아서 식었던 마음이 다시 뜨거워지기도 하네요. 이상하게도 뜨개질은 주기적으로 그 마음이 돌아왔다가 불현듯 사라져서 솜씨는 크게 늘지 않고, 비슷한 것을 반복적으로 뜨게 되네요. 그래서 뜨개질 장인, 일명 뜨개인들이 늘 부러웠어요. 아무래도 그런 마음 때문에 이 책이 궁금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뜨개인의 열두 달》은 엘리자베스 짐머만의 책이에요. 이 책은 저자가 뜨개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보여주는 열두 달 뜨개 이야기예요.
"옛날 옛적에 뜨개를 사랑한 할머니가 있었다. 그녀는 숲 한가운데에 있는, 다소 어수선하고 털실로 가득 찬 교실 하나가 전부인 학교에서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 가끔 따뜻한 난로 옆이나 검은 자작나무가 드리운 그늘에 앉아 뜨개를 하며 계절을 써 내려갈 때마다 그녀는 남편에게 자신이 발명할 수 없는 뭔가를 발명한 것 같다고 소리쳤고, 남편은 아내에게 책을 써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할머니는 책을 썼고, 첫 번째 책은 꽤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녀가 계속해서 발견해 낸 '발명할 수 없는 것들'을 빠짐없이 담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녀는 다른 책을 썼고, 그게 바로 이 책이에요." (11-12p)
저자는 일 년 내내, 밤낮없이 뜨개를 하고, 뜨개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서 같은 방식으로 같은 것을 두 번 뜨는 일이 거의 없다고 해요. 우와, 사실 이 부분이 가장 놀라운 점이에요. 실제로 뜨개인의 열두 달을 담아낸 책의 내용을 보면 1월은 아란 스웨터, 2월은 아기용품 몇 가지, 3월은 어려운 스웨터, 4월은 미스터리 블랭킷, 5월은 다음 겨울을 위한 장갑, 6월은 테두리 뜨기와 여름 프로젝트, 7월은 여행하며 뜨기 좋은 숄, 8월은 크리스마스 오너먼트 뜨기, 9월은 타이즈, 10월은 오픈칼라 풀오버, 11월은 모카신 양말, 12월은 막바지에 서두르는 스웨터까지 뜨개질 방법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어요. 7월은 여행의 달이라서 숄을 뜨는 것이 여행용 뜨갯거리로 완벽하다고 소개하네요. 원형 플레인 숄과 동심원 무늬 숄을 뜨기 위한 간결한 지침, 그리고 숄을 위한 세 가지 레이스 패턴을 알려주네요. 대부분 여행을 가면 뜨개할 시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저자는 오히려 뜨개를 하면 차분해지면서 마음의 배터리가 충전되는, 힐링 효과가 있다면서 초기에 뜬 숄도 스페인 여행 중에 완성했다고 하네요. 진정한 뜨개인이라면 오히려 뜨개를 하지 않는 사람들을 안쓰럽고 불쌍하게 여긴다니, 음... 완전히 공감할 수는 없지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긴 해요. 책에 나오는 작품들을 설명만 보고 척척 만들 만한 실력이 된다면 얼마나 즐거울까요. 그래도 진정한 뜨개 장인의 열정을 보면서 감동했네요. 중요한 건 머뭇거리는 뜨개인과 눈먼 뜨개인, 자신의 뜨개를 직접 디자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뜨개인에게 응원을 담아 이 책을 바친다는 저자의 진심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