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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집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홍은주 옮김 / 책세상 / 2024년 10월
평점 :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대부분은 주관적인 경험에 국한될 때가 많아요.
아직까지 별일 없이 잘 지내왔다면 그건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 삶은 단단한 돌이 아니라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는 유리 같다고,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세계가 있어요. 소설은 허구라는 이름표를 달고 적나라하게 그 세계를 보여주고 있어요.
《노란집》은 가와카미 미에코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제목만으로도 여러 가지 상상을 하게 되는데, 화사하고 밝은 노란색의 집은 긍정적인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네요. 하지만 누군가에겐 노란색이 꺼려지는 색상일 수 있고, 집이라는 장소 역시 고통스러운 기억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다면 소설 속 주인공 '이토 하나'에게 노란집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마흔 살의 이토 하나는 우연히 몇 줄짜리 인터넷 기사를 읽다가 까마득히 잊고 있는 그녀의 이름을 발견하게 돼요. 예순 살이 된 요시카와 기미코 씨는 20대 여성을 1년 3개월에 걸쳐 감금, 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는 내용이에요. "내가 몇 살이 되고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건, 그녀를 잊을 일은 없을 줄 알았다." (9p) 라고 할 정도로 20년 전 이토 하나에게 기미코 씨는 특별한 존재였어요. 근데 어떻게 가위로 잘라낸 듯 말끔히 잊고 지냈느냐고 묻는다면... 소설은 우리를 20년 전 노란집으로 데려가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어요. 기미코 씨의 감금 사건을 읽고서 이 사건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괜찮다고 되뇌이며 불안해 하는 이유를 아주 천천히 조금씩 알게 될 거예요. 만약 당신이라면 그때 이토 하나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해요. 전적으로 공감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애매하고도 이상한 기분이 들었네요. 그래도 이해할 수 있는 건 이토 하나가 노란색 소품을 눈에 띄는 대로 사 모으고, 집을 노란색 페인트로 칠했던 마음이네요. "개나리색, 병아리색, 바나나색, 레몬색. 노랑에도 여러 노랑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의 공통점은 아무튼 다 노란색이란 것, 그리고 노란색은 노란색인 것 자체로 우리에게 용기와 안도감을 주는 특별한 색이라는 것이었다." (125p) 아직 어리고 불안했던 아이에게 노란색은 삶의 희망을 줬던 것 같아요. 하지만 노란집과 기미코 씨에 관한 기억들이 얼룩덜룩 덧칠해진 페인트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네요.
"누구는 돈이 필요 없나? 그러니까 다들 땀 흘려 일하는 거잖아? 그러나 나는 가볍게 웃으며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땀 흘린다고.
누구 땀은 좋은 땀이고 누구 땀은 나쁜 땀이라고 단정할 수 있는 당신은 대체 어디서 그 땀을 흘리고 계신지?
아마 대단히 근사한 장소일 테죠, 괜찮으시면 다음에 가는 법을 좀 알려주시죠." (498p)
열 몇 줄로 적힌 사건의 기사 뒤에 진짜 이야기는 따로 있었네요. 영원히 기억할 줄 알았던 그녀의 존재를 잊었던 건, 어쩌면 살기 위한 기억 상실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지키고 싶은 것, 지켜야 할 것들이 있기에 버텨내고, 살아낼 수 있었던 거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