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옐로페이스
R. F. 쿠앙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8월
평점 :
"뉴욕의 출판 시장은 늘 혼란스럽고,
편집자들과 홍보 담당자들은 과로와 저임금에 시달리며, 일은 늘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는다고 했다.
저 건너편의 잔디는, 실제로 가보니 생각보다 푸르지 않았다. 작가들은 하나같이 책을 냈던 출판사를 싫어했다. 신데렐라 이야기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고된 노동과 끈기, 낮은 확률의 성공 기회를 잡기 위한 분투뿐이었다.
그런데 왜, 누구는 처음부터 벼락출세해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것일까?" (11-12p)
《옐로페이스》는 R.F. 쿠앙의 소설이에요. 우선 책 제목부터 언급해야 할 것 같아요. 옐로페이스는 블랙페이스처럼 백인이 아시아인을 흉내내기 위해 아시아인의 용모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무대 분장에서 유래된 것으로, 아시아인을 희화하는 인종차별적 문화 행위를 일컫는 단어예요. 왜 이 단어를 선택했을까, 그 이유를 처음부터 시원하게 들려주고 있어요. 이 소설의 주인공인 '나'는 주니퍼 헤이워드, 스물일곱 살의 작가예요. 그녀의 동갑내기 친구 아테나 리우는 예일대학 신입생 시절부터 똑같이 작가의 꿈을 품고 글쓰기 세미나에 참여했으며 같은 문학잡지에 단편소설이 실린 적이 있어요. 분명 출발점은 같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상황은 하늘과 땅 차이예요. 아테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대형 출판사와 여러 권의 출간 계약을 맺었고, 스물일곱 살의 나이에 이미 세 권의 소설책이 출간하여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 작가인 데다가 외모마저도 중국의 앤 해서웨이 같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라서 완벽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요. 반면 '나', 준 헤이워드는 그저 갈색 눈, 갈색 머리카락의 평범한 백인 여성이며 데뷔작 계약은 꽤 괜찮았지만 초판 발행 부수가 저조했고, 이후 담당 편집자마저 해고되면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작가가 되었어요. 아테나와는 어쩌다 친구가 된 사이인데 아테나가 원래 친구가 없는 편이고 둘 다 워싱턴에 살다보니 9년 넘게 계속 어울리며 지내게 된 거예요. 아테나가 넷플릭스와 거액에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며칠간 좌절에 시달렸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아테나는 해맑게 '나'를 불러내 축하 자리를 만들었고, 비싼 루프톱 바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한 아테나가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했던 거예요. 바로 그 아테나의 집에서 일이 터졌고,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어요.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질투와 시기심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감정이지만 너무 과도하게 넘칠 때 늘 문제가 생기는 것 같아요. 주인공 '나'는 자신이 평범한 백인이고, 아테나는 매력적인 아시아인이라서 훨씬 더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여기면서 그녀의 성공을 시기 질투했어요. 겉으론 축하의 말을 건네면서 속으론 죽기를 바라는 나쁜 마음을 품었지만 진짜 자신의 눈앞에서 아테나가 죽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 자기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타인이 가진 사실에 분노하는 것이 시기이고, 나에게 있는 좋은 것을 상대가 빼앗으려 할 때 느끼는 감정이 질투라고 해요. 상대가 가진 것이나 이룬 것을 자신은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분노, 불안, 우울, 좌절, 절망이라는 복잡한 감정들을 통틀어 시기 질투라고 표현한 거죠. 분명히 시작은 시기, 질투였던 게 맞아요. 하지만 아테나의 죽음 이후에 벌어진 상황들은 출판업계, 더 나아가 미국 사회의 문제점들을 들춰내고 있어요. 저자인 R.F. 쿠앙이 누구인지,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고,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해 "경쟁이 치열한 출판업계 내의 외로움에 관한 공포소설"이라고 말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네요. 소설 속 아테나처럼 스물두 살에 발표한 첫 소설 <양귀비 전쟁>으로 평단과 독자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데뷔를 했던 R.F. 쿠앙은 1996년 중국 광저우 출생으로 네 살 때 미국으로 이주했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도서상을 휩쓸면서 영미권에서 가장 핫한 스타작가라는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최근 영미권에서 눈길을 끄는 아시아계 콘텐츠가 많아졌는데 이들의 성공이 단순히 다양성 덕분일까요. 불편한 진실에 관해 소설은 겨우 한꺼풀을 벗겨냈을 뿐이에요.
"인종적 트라우마가 좀 팔리는 소재잖아, 그렇지?
(···) 기껏 책을 내놨는데 아시아인 작가는 이미 있다는 말을 듣는 게 어떤 건지 알아?
한 시즌에 두 개의 소수집단 이야기는 내놓을 수 없다는 말을 듣는 게 어떤 건지 아냐고." (421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