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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 - 현대 문명의 본질과 허상을 단숨에 꿰뚫는 세계사
수바드라 다스 지음, 장한라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6월
평점 :
우리가 쓰는 서양문명이라는 말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중요한 건 서양이라는 말 속에 서양과 비서양의 구분은 지리적인 문제가 아니라 오로지 백인우월중심에서 비롯되었고, 유럽 제국의 야망과 권력에 발맞춰 식민지 통치자들이 자신들만의 프레임 속에서 문명을 규정했다는 사실이에요. 수바드라 다스는 우리에게 서양의 역사에 관한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어요. 서양문명은 식민지를 건설한 국가들의 비전이자 변명이었고, 자신들이 만든 문명이라는 틀을 이용해 거대한 억압과 착취의 구조를 만들면서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데 성공했다는 거예요. 우리 머릿속에 각인된 서양문명이라는 관념이 훌륭함 그 자체였다면 이 책을 읽은 뒤에는 균열이 생기게 될 거예요. 서양문명은 우리가 생각한 만큼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나쁘다는 사실, 문명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생각들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이해하려면 권력의 프레임을 벗어나 객관적인 관점에서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세계를 움직인 열 가지 프레임》은 수바드라 다스의 첫 번째 책이라고 해요. 저자는 과학적 인종주의와 우생학의 역사가 오늘날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연구해왔고, 권력이 조작하고 숨긴 역사를 알리기 위해 힘써 왔는데, 이번 책에서는 서구 중심의 역사를 지탱해온 서양 문명이라는 관념이 커다란 거짓말이었음을 열 가지 프레임으로 밝혀내고 있어요. 서양 문명을 뒷받침하는 사상들, 즉 과학, 교육, 문자, 법, 민주주의, 시간, 국민, 예술, 죽음, 공동선이라는 가치들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배적 프레임으로 전파되어 서구 세계의 판을 짰는지를 설명해주고 있어요. 그동안 우리는 서양문명이 하는 거짓말에 속아 우리를 가르고, 권력을 박탈하며 무너뜨리고 있는 줄 모르고 있었던 거예요. 무엇이 문명화된 것이고 무엇이 미개한 것인지를 나누고 규정하는 프레임은 권력 게임의 승자가 결정했고, 현재 서양의 문명세계에도 여전히 그 권력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버린 거예요.
2022년, 저자가 이 책을 쓰고 있을 때 영국은 국적 및 국경법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대부분 난민과 망명자를 겨냥한 것이라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고, 2023년 최고 법원에서 불법이라는 판결을 받았으나 정부가 이 판결에 대한 항소를 대법원에 제기해둔 상태라고 하네요. 현재 내무 장관은 아무런 경고 없이 개인의 영국 시민권을 박탈할 권한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영국 시민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이 새로운 법이 어떤 종류의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는지 생각하며 거울을 봤다는 저자는, 아직도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하네요. 나라를 고르는 사람이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는 건 문명적인 모습으로 보이진 않아요. 규칙이란 충분히 합당한 이유가 있을 때만 깨질 수 있도록 만든 것인데 그 최고의 이유가 바로 돈, 그리고 권력이라는 건 씁쓸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네요. 여전히 서구문명의 프레임이 깊숙히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지만 이 책을 통해 적어도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무너뜨리는지를 알게 되었으니 다음 단계는 바꾸고 바로잡는 일이 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