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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청춘 세트 - 전2권 ㅣ 청춘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다자이 오사무 지음, 최고은 옮김 / 북다 / 2024년 5월
평점 :
청춘,
우리에게 오늘은 청춘의 한 페이지...
투명한 케이스 안에 파스텔 빛으로 쓰여진 靑春, 반짝이는 두 글자와 함께 자리한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을 발견하고, '읽어야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산뜻한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어버릴, 암울하고 치열한 청춘의 이야기를 들려줄 주인공이니까요. 불안하고 지친 청춘들에게 나약하게 굴지 말라고,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건 폭력인 것 같아요.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으로 '어디론가 숨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나약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청춘도 아픈 거예요. 너무나 아프고 괴로운 순간들, 그 이야기가 여기에 담겨 있어요.
"나는 그가 미워서라기보다는 나 자신의 나약한 마음이 창피해서 우울해져 버렸다."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톱니바퀴>, 249쪽
"당신도 알지? 내가 나약한 게 아니라, 괴로움이 너무 무거운 거야.
이건 투정이야. 원망이지.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분명하게 말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아니, 당신조차 내 철면피의 힘을 과신하고, 그 남자는 괴롭다, 괴롭다 해도 척이다,
시늉이다, 하고 가벼이 여기잖아."
_ 다자이 오사무 <우바스테>, 184쪽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 다자이 오사무 × 청춘》 세트는 두 소설가의 단편집 두 권과 청춘노트 한 권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일본의 대표적인 두 소설가의 단편집에서 '청춘'을 주제로 한 단편들, 각각 열두 편의 작품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어요. 둘 다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기에 모든 작품이 청춘의 이야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예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어떤 인물인지 몰랐어요.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1914년 기쿠치 간, 구메 마사오 등과 함께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하고 <라쇼몬>, <코> 등을 발표했는데, <코>가 나쓰메 소세키로부터 극찬을 받으면서 문단에서 크게 주목받기 시작해 합리주의와 예술지상주의의 작풍으로 시대를 풍미했으나 말년에는 자신의 삶을 조롱하는 자조적인 작품들을 많이 썼고, 서른다섯 살 되던 해인 1927년 장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해요. 그의 죽음은 일본 근대사에서 관동대지진과 견줄 만큼의 사회적 충격이었다고 하네요. 그로부터 8년 뒤인 1935년 일본 출판사 문예춘추의 사주이자 아쿠타가와의 친구였던 기쿠치 간이 아쿠타가와 상을 제정하여 현재까지도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으로 인정받고 있어요. 다자이 오사무는 1935년 소설 <역행>이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에 실패해 크게 낙심했고, 이후 소설집 <만년>, <사양>, <인간실격>, <앵두> 등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과 대중에 논란과 지지를 받으며 20세기 일본 데카당스, 무뢰파 문학의 대표 작가가 되었으며 네 차례나 자살 기도를 했던 그는 1948년 연인과 함께 투신해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어요.
<아쿠타가와 × 청춘>의 첫 장에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기쿠치 간, 초조 무토, 도쿠타로 나가미가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실려 있어요. 아쿠타가와는 죽기 직전에 가까운 지인과 친구들을 방문했지만 아무도 못 만난 채 생을 마감했는데, 7월 초에는 기쿠치 간을 만나려고 두 차례 문예춘추사를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고, 자살하기 바로 전날에는 한동네에 살았던 시인 무로오 사이세이를 찾아갔으나 잡지 취재로 나가 있어서 만나지 못했대요. 이 때문에 사이세이는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해요. 죽기 전 친구인 구메 마사오에게 <어떤 바보의 일생>이란 작품을 건넸다는데, 이 청춘 세트에 수록되어 있어요. 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일컬어지는 <톱니바퀴>의 마지막 부분이 아쿠타가와의 유언처럼 느껴졌어요.
"그건 내 일평생 가장 무서운 경험이었다. 내게는 이제 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갈 힘이 없다. 이런 기분 속에서 살아가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다. 누구 내가 잠든 사이에 가만히 목을 졸라 죽여 줄 사람 없나?" (277p)
다자이 오사무는 '생각하는 갈대'라는 제목으로 일본낭만파의 기관지에 약 일 년 정도 글을 연재했는데 <다자이 오사무 전집 10> (1989년, 지쿠마쇼보)에 1, 2, 3 으로 나뉘어 수록된 글을 <다자이 오사무 × 청춘>에서는 한 편으로 묶어 <생각하는 갈대>로 실려 있어요. 여기에 염려라는 것에 대해 쓴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염려에는 흑과 백, 두 종류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니와부시의 어구인 '내일이 기다려지는 보물선', 그리고 푸시킨의 시구인 '나는 내일 살해될 것이다'는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점에서는 똑같아 보이지만, 반나절 곰곰이 생각해 보았더니, 흑백처럼 명확하게 분리되어 있었다." (410p) 그리고 편집부의 편지 때문에 스무 장 남짓의 글을 쓴 뒤 모든 원고료를 거절했다면서 이런 말을 남겼어요. "사람은 각자 제 일에만 힘쓰는 것이 제 일이지만, 가끔은 이웃의 슬퍼지도록 강한 자존심을 모른 척하고 따뜻하게 대해 주도록 하자." (412p) 라고, 아마도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 바라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부디 나 자신에게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주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