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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초 1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신라의 혜초 스님이 썼다는 <왕오천축국전>이 김탁환 작가를 통해 신비로운 이야기가 되어 내 손 안에 있다.
“대유사! 한 번 들어가면 되돌아 나오지 못한다는 사막길을, 그래도 많은 이들이 갖가지 이유로 떠났다가 무사히 귀환할 수 있는 것도 다 저 돈황 석굴에 든 이들이 자비를 바라며 올리는 기도 때문이리라.” (2권 267p)
혜초 스님의 발자취를 좇는 일은 부단히 모래바람을 맞으며 걷는 느낌이었다. 실크로드라 불렸던 그 기나긴 사막길을 직접 걸어보지 않은 이가 어찌 감히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섣불리 덤벼든 경솔함을 탓할 수 밖에.
걷는다는 행위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수행이 된 것은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고구려 출신의 당나라 장수 고선지, 신라 상인 김란수, 파밀 고원을 넘어온 서역 무희 오름과 내림, 돌궐 사람 야곱, 대유사 사막에서 죽어간 이들……
인연이란 참 묘하다. 악연도 피할 수 없는 인연인 것 같다. 삶과 죽음이라는 길을 걷는 인간들은 인연의 고리 속에 희로애락을 담고 있다. 얽힌 고리를 푸는 일,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이 열반의 경지가 아닐는지.
죽음의 사막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으나 기억을 잃은 혜초 스님에게 기억을 찾는 방법은 자신이 기록한 양피지를 읽는 것이다. 이 모든 여정을 제대로 따라가려면 긴 호흡이 필요하다. 검은 모래 폭풍을 헤매던 병사들처럼 사라진 기억을 찾는 일은 서두르면 낭패를 본다. 가만히 두 손을 벌린 채 공중 소리를 기다리듯,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쉽지 않다.
서역 무희 오름을 묘사한 대목을 보면 ‘청록색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오름의 쌍둥이 여동생 내림은 영혼의 반쪽이라 할 수 있다.) 그녀와 함께 있는 고양이 ‘피쉬’의 눈동자는 더욱 특별하다. 오름은 고양이의 푸른 쪽 눈을 좋아하고, 내림은 노란 쪽 눈을 좋아한다. 이들의 존재는 신기루와 같다. 실제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오름과 내림은 현실 세계에서 허상과 실상을 구분 못하는 우매한 인간들을 조롱하는 것 같다. 신비로운 그녀들의 정체를 헤아리다 보면 인간 내면의 죄악이 들끓는 기분이 든다.
그냥 단순하게 오름과 내림, 고양이와 물고기로 바라보는 것이 속 편하다. 깊이 파고들수록 모래 구덩이 속에 빠질 것만 같다.
혜초 스님이 얻은 깨달음은 혜초 스님의 몫이다. 그 길을 좇는다고 해서 내 것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억지를 부린 모양이다. 장사꾼 김란수를 탓할 일이 아니다. 속된 마음은 기억을 잃은 혜초 스님이 나약하고 비루한 사내로 보이게 만들었다. 어쩌면 처음부터 혜초 스님을 얕봤는지도 모른다. 대단히 훌륭한 고승을 만날 줄 알았는데 지나치게 평범한 모습에 조금 실망했는지도.
자신이 걸어간 길을 꼼꼼히 적어나간 한 여행자의 기록이 뭐가 그리 대단할까? 차라리 여행자라면 상관 없겠지만 불제자로서 양피지 기록은 집착으로 보였다.
그러나 기록에 연연하지 않고 묵묵히 갈 길을 갔더라면 오늘날 우리에게 사막길은 아무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혜초 스님이 만난 낯선 벗들은 잊혀졌을 것이다.
<왕오천축국전>은 프랑스인 폴 펠리오가 둔황 17국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둔황 석굴의 자비로 오늘날 빛을 본 것이리라.
실크로드, 이 책의 이끌림 대로 그 길을 걷는 날이 온다면 과연 나는 무엇을 얻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