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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승리보다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그 보다 이 책의 장르는 뭘까?
어제 2008년 북경 올림픽 개회식이 있었다. 마침 이 책을 읽던 중이라 웃음이 났다. 책의 한 구절이 떠올라서다.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것을 꼽으라면, 올림픽 개회식은 분명히 10위 안에 들 것이다.” (82p) 100% 공감한다. 그런데 그 지루한 개회식을 가족이 모여 앉아 함께 봤다. 가족 화합을 위해서.
엄청난 규모의 공연은 감탄할 만 했다. 저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을까 라는 점에서. 전체 화면을 보여줄 때는 괜찮은데 클로즈업한 장면을 볼 때마다 땀 흘리며 운동장을 뛰어다니는 사람들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중국이 자랑할 만한 세계 1위는 역시 13억 인구가 아닐까? 이런 딴 생각을 하며 개회식을 지켜보면서 슬슬 후회되기 시작했다. 각국 선수 입장이 시작된 것이다. 애국심을 발휘하여 우리 나라 순서를 기다리자니, 176번째란다. 마지막이 204번째로 중국이 입장했다. 이제껏 올림픽 개회식을 처음부터 끝까지 본 적이 없었는데 괜히 책에서 지루하다니까 무모한 도전을 한 것 같다. 기왕 보기로 했으니 올림픽 개회식의 하이라이트 성화 점화를 기다렸다. 거의 5시간이 걸린 것 같다. 마지막 성화 점화는 중국의 체조 스타 리닝이 공중을 한참 날아올라가 했다. 높이가 아찔할 정도인데 역시 왕년의 체조선수라서 다른 것 같다. 전체 화면상 날아가는 성화 점화자가 깨알같이 보였다. 대단한 성화 점화였다.
올림픽 개막과 함께 올림픽에 관한 책을 읽으니 시기 적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올림픽에 대한 대중매체의 반응이 열광적일수록 이 책의 분위기가 썩 마음에 든다. 작가면서 기자 신분으로 시드니 올림픽 현장에 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다른 시선이 진실되게 느껴진다.
시드니의 여러 곳을 한가롭게 구경하면서 매일 원고지 25-30매 분량의 원고를 쓰는 작가의 능력이 놀랍다. 사실 조금 부럽기도 하다. 단순한 여행객보다 목적 의식이 있어서 좋고 지루할 틈이 없으니 말이다. 올림픽을 취재한다기 보다는 파헤친다고 할까? 직접 현장에서 보니 이런 상황이더라, 기분은 어떻고 인상적인 것은 이것이더라. 관광객과 기자의 중간쯤 입장에서 쓴 글 같다. 특이한 점은 일본의 마라톤 선수인 아리모리 유코와 이누부시 다카유키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금메달리스트가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최근 경기에서 패배한 선수들이다. 왜 그들을 취재했을까?
바로 승리보다 소중한 것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올림픽 시즌이 되면 모두가 다양한 스포츠에 열광한다. 메달을 얼만큼 획득하느냐가 주된 관심사다. 이 책이 올림픽 취재기가 아닌 이유가 그것이다. 메달을 딴 승리자는 이미 충분한 관심을 받고 있다. 반면에 패배한 다수의 선수들은 소외된다. 올림픽 정신을 강조하면서도 오로지 승리에 열중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다.
“올림픽 대회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 -피에르 쿠베르탱(Pierre Coubertin)
작가가 도쿄로 돌아와 올림픽 녹화중계를 보니 전혀 다르게 보였다는 것을 이해할 것 같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TV 속 세상이 전부가 아니다. 거대한 자본 논리에 의해 좌우되는 승리 지상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승리를 싫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승리만이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여자 마라톤 선수 아리모리 유코는 금메달을 따지는 못했지만 자기만의 올바른 방식을 모색하는 멋진 선수다. 그것이 진정 올림픽다운 선수가 아닐까?
“저는 선수이기 이전에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들에게는 엉뚱한 얘기로 들릴지도 몰라요. 선수에게 인간적인 면을 원하는 사람은 없는지도 모르죠. 사람들 눈에는 선수라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게 가장 중요해 보일 테니까요…….하지만 전 이제 제가 추구하는 선수의 모습에 조금씩 다가가려고 해요.”(326p)
이제 올림픽 경기가 시작된다. 그 동안 이 날을 위해 땀 흘리며 노력했을 모든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정한 승리는 노력한 모두의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교장님의 훈화 말씀처럼 뻔한 이야기라고 딴 짓 하며 외면하지 말기를.
세상에는 뻔한 진리가 가장 위대하다. 누구나 안다고 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어쨌거나 3주 동안 시드니 올림픽도 구경하고 한 권의 책도 남긴 작가가 부럽다. 어느 곳에 있든지 그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잘은 모르지만 유쾌함이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