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회비록 1 - 이승에서 떨어진 저승명부
천지혜.사니 지음 / 책과나무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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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이생망, '이번 생은 망했어.'라는 말이 한때 유행했었죠.

너무 힘드니까, 자조 섞은 말인 줄 알지만 농담으로라도 해서는 안 될 말이 아닌가 싶네요. 말이 씨가 된다고 하잖아요. 실패의 경험을 패배와 낙오로 해석하는 건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는 매우 고약한 삶의 태도네요. 그걸 자꾸 입밖으로 내뱉는 건 자신에게 저주를 거는 것이나 마찬가지네요. 잠시 낙담할 수는 있지만 포기는 금물, 주절주절 '이생망'에 대해 떠들게 된 건 전부 태선이 때문이에요. 누구보다 최악의 현생을 살아가는 태선의 치열한 투쟁기를 보고 있노라니 더위를 잠시 잊었네요.

"말해보거라, 지금껏 너 때문에 몇 명이나 죽어 나갔느냐."

"그럴 만하지. 전생에서 그리도 패악을 저질렀으니."

'허면······, 내 주변 사람 모두가 죽어 나간 것이 전생의 업보 때문이란 말인가.'

(34p)

천지혜, 사니 작가의 사극 판타지 장편소설 《윤회비록 1》의 주인공 태선은 전생의 업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비참하게 죽어 나가는 저주를 타고난 인물이네요. 이 소설은 이승에 떨어진 저승 명부 '사율계'를 둘러싼 전생과 현생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네요. 주인공 태선은 현생에서 유일하게 지키고 싶은 유비의 목숨을 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되는데요. 현생에서 유비는 태선의 몸종으로 살아왔고, '아비를 죽일 상'이라는 말에 아비에게 버려진 기구한 운명의 여인이네요. 사율계에는 분명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죽지 않고 겨우 숨을 붙잡고 있네요. 선기는 태선의 집안을 죽음으로 몰고 간 원수 집안의 아들인데 아버지의 만행을 두고 볼 수 없어서 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태선을 돕는 인물이네요. 사천왕을 죽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야욕을 품은 서후라는 악당도 등장하네요. 여러 인물들의 얽히고 설킨 인연들이 전생에서 현생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네요. 무엇보다도 유비를 향한 태선의 일편단심이 감동적이네요. 그야말로 천년의 사랑을 만날 수 있네요.

태선이 원하는 건 오직 유비를 살리는 것, 송명사의 주지 산명스님이 알려준 비책은 사율계를 사천왕에게 돌려주면서 거래를 해보라는 거예요. 사천왕이라면 수명을 늘릴 수 있으니 말이에요. 사천왕을 찾을 수 있도록 산명스님은 태선에게 전생의 연, 인연사를 볼 수 있는 능력을 전해주고, 태선의 눈에는 붉은 실로 엮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펼쳐지는데 끔찍한 광경을 통해 전생이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알게 되네요.

"인간지사, 모두 인과응보라는 말을 들어보았느냐."

"현생에서의 업은, 모두 전생과 연결되어 있다.

네가 전생에 저질렀던 업보가, 현생에 고통으로 오는 것이지."

(94p)

환생, 윤회를 딱히 믿는 건 아니지만 행위의 선악에 따라 다음 생의 조건이 결정된다는 불교의 교리가 마음에 들어요. 자업자득, 인과응보야말로 이생을 착하게, 소중하게 살아가는 근본이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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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 - 세계사를 바꾼 문명의 생성과 문화인류 이야기
홍익희 지음 / 체인지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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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인류 문명은 어떻게 발전해왔을까요.

무엇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색다른 이야기가 펼쳐지네요.

《물질이 일상에서 이렇게 문명을 바꿀 줄이야》는 청소년들을 위한 세계경제사 교양 수업이라고 할 수 있네요.

저자는 32년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서 근무하며 18년을 해외 7개국에서 일했고, 이후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지금은 자유로운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해요. 이 책에서는 우리 가까이에 있는 물질들을 따라가며 역사와 경제의 흐름을 살펴보고 있네요. 인류 문명 발전의 숨은 원동력인 다섯 가지 물질, 즉 소금, 모피, 보석, 향신료, 석유가 어떻게 세계화를 촉진하고 제국의 성장과 몰락, 거대한 전쟁의 배경이 되었는지 물질과 경제의 관계를 역사 이야기로 풀어내고 있네요.

소금은 마트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식재료 양념이지만 과거에는 귀해서 화폐로 쓰였다고 해요. 로마가 제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소금 덕분, 특히 염전을 만들 수 있는 환경과 강이라는 유통망으로 소금 유통의 중심지가 되었네요. 소금을 대륙으로 수출할 수 있는 소금길과 소금길 세금이 막대한 부를 움직였고,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생긴 것도 테베레강 하구의 소금길이 그 시작이라고 하네요. 라틴어로 '살라리움'이 소금이라는 뜻인데 군인들에게 소금을 급료로 주면서 살라리움이라 부르던 것이 나중에 월급을 샐러리, 직장인을 샐러리맨으로 부르는 유래가 된 거네요. 부와 권력의 상징이 된 모피, 인류가 탐낸 작은 돌 보석, 대항해 시대를 연 향신료, 풍요와 갈등을 함께 낳은 석유까지 물질이 어떻게 세계사를 움직였는지를 파헤치는 경제사 교양서네요. 마지막 물질인 석유에서는 최근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기로 드러난 OPEC의 한계를 설명해주고 있네요. UAE는 OPEC 탈퇴로 생산쿼터 제약에서 벗어나 원유 수출을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는데, 이는 과거처럼 산유국들이 하나의 목소리로 시장을 지배하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각자도생의 시대로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네요. 특정 물질을 독점하거나 통제하는 국가가 세계 패권을 쥐던 역사를 통해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무역과 경제 패권의 원리를 살펴보는 계기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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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통하지 않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
쿠키커플(쿠리코·경식) 지음 / 북엔드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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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사랑에 빠지는 순간, 정말로 큐피트의 화살을 맞은 건지도 모르겠네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상형으로 꼽는 것은 다 부질 없는 일인 것 같아요. 눈에 콩깍지가 씌어 버리면 모든 것이 사랑스럽게 느껴지니 말이에요.

사랑엔 국경도 없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걸 현실로 이뤄낸 국제 커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네요.

《말이 통하지 않는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한일 커플 크리에이터 쿠키커플의 첫 에세이라고 하네요.

이 책은 한국 남자 '경식'과 일본 여자 '쿠리코'가 어떻게 말도 통하지 않는데 사랑을 느끼고, 연애하며 결혼에 이르렀는지, 두 사람의 알콩달콩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네요. 실제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확실한 비즈니스 관계로 아무런 기류가 흐르지 않았고, 국제영화제에 참석한 한국팀과 그들을 일주일간 서포트하는 담당자 사이였는데, 5일째 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서툰 영어로 말을 주고받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꼬박 다섯 시간 동안 밤새 이야기를 했더래요. 언어는 달라도 마음이 통할 수 있다는 걸 깨닫는 바로 그 순간이 사랑의 시작이었겠죠.

국제 커플이 겪어야 할 어려움이 어디 한둘이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을 단단하게 묶어준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쿠리코의 시점과 경식의 시점으로 나누어 각자 느끼고 생각했던 것들을 기록한 내용을 읽다 보면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통'의 방식인 것 같아요. 한국과 일본의 문화적 차이, 남녀 차이, 성격 차이 등등 같은 것보다 다른 것이 훨씬 더 많지만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만 있다면 얼마든지 조율하며 잘 지낼 수 있는 거죠. 주변 사람들은 두 사람을 '언제 헤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커플'이라고 했다는데, 지금 9년째 아이까지 낳아 잘 살고 있으니 이제는 환상의 커플이 되었네요. 어떤 어려움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가장 강력한 사랑의 힘으로 이뤄낸 행복한 가정의 모습을 만날 수 있어서 보는 내내 즐거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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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단편선 ㅣ 소담 클래식 8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이은연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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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모태솔로인 스물여섯 살의 남자가 있네요.

상상력이 풍부해서 공상하기를 좋아하고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알아차리는 편이지만 소심하고 낯을 많이 가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어도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아마도 인프피 성향인 이 남자가 생애 처음으로 여자에게 말을 걸었네요. 그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우연인지, 운명인지 울고 있는 젊은 아가씨를 발견했고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따라가다가 너무 부담을 줄 것 같아서 맞은편에서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때 마침 술 취한 신사가 위협적으로 그녀를 쫓는 바람에 구세주 역할을 하게 된 거예요. 로맨스 영화나 드라마에서 남녀 주인공의 첫만남으로 어울리는 장면이죠. 중요한 건 그다음 장면이네요. 그녀는 왜 울고 있었을까요.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랑?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 그들이 느끼는 감정의 소용돌이... 창작자들의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은 '사랑'인 것 같아요. 요즘은 일반인들이 출연하는 리얼 연애 프로그램이나 이혼을 소재로 한 예능이 인기를 끌면서 가상이 아닌 현실 속 남녀 관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원조는 따로 있었네요.


"인간은 신비하다. 우리는 이런 신비함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혹여 이 깨달음을 위해 평생을 바친다 해도,

시간을 낭비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 이 비밀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왜냐하면 나는 인간이고 싶기 때문이다."

ㅡ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옙스키

(275p)


《도스토옙스키 단편선》은 소담 클래식 시리즈 여덟 번째 책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도스토옙스키의 대표 단편 3편을 만날 수 있네요.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같은 대작들이 다소 무겁게 느껴져서 엄두를 못 내는 독자들이 있다면 이번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세계로 빠져드는 첫걸음이 될 것 같네요. 각 작품의 주인공은 스물여섯 살의 청년, 중년의 남성, 열한 살 소년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우리 내면에서 어떻게 요동치는지를 섬세하고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네요. 첫눈에 반하는 설렘과 떨림, 헌신적인 마음과 배신, 사랑에 눈이 먼 질투와 의심, 그 고통스럽고도 달콤한 감정들이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흥미로운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네요.

첫 번째 작품인 「백야」는 몽상가 청년의 사랑 이야기가 '모태솔로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를, 두 번째 작품인 「남의 아내와 침대 밑 사나이」는 '사랑과 전쟁', '이혼숙려캠프'를, 세 번째 작품인 「첫사랑」은 '부부의 세계'를 떠올리게 되네요. 올해는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의 탄생 205주년이라고 하네요. 본인의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도스토옙스키, 그가 그려낸 사랑 이야기는 꽤나 매콤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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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장사 육지환
박영광 지음 / 스토리가든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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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아아, 주먹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불끈 쥔 주먹을 펼 수가 없네요.

세상에는 너무도 끔찍한 것들이 많아서, 그들을 인간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기에, 그것들이 선량한 사람들에게 저지른 짓들을 보면 참을 수가 없네요. 꾹꾹 눌러담은 감정들이 켜켜이 쌓여서 가슴이 답답할 때도 있어요. 그러다가 압도적인 괴력으로 악랄한 범죄자들을 맨손으로 제압하는 주인공을 만나면 속이 후련해지는 거예요.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의 주먹으로, 대신 울분을 쏟아내는 거죠.

박영광 작가의 장편소설 《천하장사 육지환》은 진짜 형사가 쓴 생생한 형사 소설이네요.

주인공 육지환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꿋꿋하게 버텨낸 인물이네요. 타고난 괴력으로 모래판을 제압했던 천하장사 출신 씨름꾼에서 형사가 된 것은 오직 복수를 위해서예요. 정의감에 불타는 형사가 아니라 개인적 복수심에 이글대는 형사라는 점이 의아할 수 있는데, 그의 사연을 알고 나면 반박하기가 어렵네요. 형사,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등등 직업적 특성상 냉철한 이성도 중요하지만 뜨거운 가슴 없이는 진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육지환의 주먹은 나쁜 놈들 앞에서 조금의 망설임 없이 나아간다는 점에서 통쾌했지만 한편으로는 여기에 나오는 범죄 사건들이 낯설지 않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사건들이라는 점에서 다소 충격이 있었네요. 언론에서 워낙 떠들썩하게 보도했던 범죄 사건들이라서 이미 알고 있는데도 육지환 형사를 중심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벌어진 이야기로 풀어내니 그 생생한 묘사가 감정을 들끓게 한 것 같아요. 인간이길 포기한 극악무도한 것들의 추악한 면들을 목격하면서 육지환에게 완전히 감정이입이 되어 그가 내뻗는 분노의 주먹이, 점점 통쾌함보다는 고통과 슬픔으로 다가왔네요. 사회적 약자가 범죄나 학대 피해를 입을 경우, 공권력은 얼마나 그들을 보호하고 지켜주는지, 우리는 이미 많이 봐 왔기에 기대감이 크지 않은 거예요. 하지만 낙담하고 포기해버리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올곧고 우직하게 밀고나가는 뚝심과 피해자와 가족의 고통을 공감하는 따뜻한 마음을 지닌 육지환을 보면서 그의 존재 자체가 강력한 위로가 되었네요. 앞으로도 그의 활약을 볼 수 있는 2편이 나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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