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북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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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샛말로 "이게 실화냐?"라는 말이 있죠.

다양한 의미를 함축한 감탄사라고 할 수 있어요.

<더 글라스 캐슬>을 읽다보면 이 말이 저절로 튀어나와요.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라는 말씀.

진짜 실화라서 더 놀라운 이야기예요.

저자 저넷 월스는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라고 해요.

그녀는 20년 간 숨겨왔던 자신의 가족사를 이 한 권의 책으로 고백하고 있어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누구라도 저넷과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다면 평생 비밀로 묻어두었을 과거라고 생각해요.

첫 장면이 굉장히 인상적이에요.

뉴요커로 살고 있는 그녀는 택시를 타고 파티 장소로 가던 중 우연히 차창 밖으로 바라봤어요.

그때 거리에서 허름한 노숙자가 쓰레기를 뒤지고 있는 걸 봤어요.

그 노숙자는 바로 그녀의 엄마였어요.

이게 어찌된 일이냐고요?

그녀가 아무리 부모를 도우려고 해도,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고 있는 거예요.

남들 보기에는 꾀죄죄한 노숙자의 모습으로.

이 책을 끝까지 읽다보면 그녀의 부모가 얼마나 고집불통인지 알 수 있어요.

엄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자 철부지 소녀 같고,

아빠는 가족을 끔찍히 사랑하지만, 그보다 술을 좀더 끔찍히 사랑하는 몽상가 같아요.

저넷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언니 로리, 남동생 브라이언과 유랑 생활을 했어요.

어릴 때는 온가족이 차를 타고 이곳저곳을 여행하듯 다녔기 때문에 재미있는 모험처럼 느꼈던 것 같아요.

부모의 양육방식이 거의 방치 상태라서 남들 눈에는 위태롭게 보였지만 적어도 삼남매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점점 아이들이 커갈수록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어요.

아빠가 일을 구하지 못해서 기본적인 음식을 못 챙겨먹을 때가 많았고, 심하게 다쳐도 병원 치료는 아예 받지 못했어요.

유일하게 저넷이 세 살 때 엄청 심각한 전신 화상을 입었을 때만 입원 치료를 받았어요.

피부이식을 여러 차례 받을 정도로 심했는데 거의 나아갈 때쯤 아빠가 무작정 퇴원시켜버렸어요.

술만 마시면 난폭해지는 아빠에게 저넷은 생일선물로 술을 끊어달라고 부탁했고,

아빠는 며칠 동안 방 안에서 금단 현상을 견뎌내며 알콜중독에서 벗어났어요.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이 지속되면서 다시 술에 손을 대게 된 아빠는 완전히 알콜중독자가 되었어요.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였지만 경제개념이 없어서 살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다행히 교사자격증이 있어서 잠깐 아이들이 다니는 초등학교의 교사 일을 한 적이 있지만 오래 가지 못했어요.

휴우~~~ 자녀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저넷의 부모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똑똑했던 언니 로리는 어떻게든 엄마를 대신해서 살림을 꾸려보려고 했어요.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 하면서 저금통에 돈을 모았어요.

그런데 술 때문에 딸의 저금통까지 손 댄 아빠를 보고 로리의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어요.

그 돈은 로리가 대학 진학을 위해서 뉴욕에 가려고 차곡차곡 모았던 피 같은 돈이었기 때문이죠.

이밖에도 한숨을 유발하는 사건들과 어려운 상황들이 펼쳐져요.

아빠는 늘 말버릇처럼 아이들을 위해 유리성을 짓겠노라 말했었죠. 왜 하필 유리성이었을까요.

어쩌면 아빠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아닐지... 저넷 부모의 삶은 얇은 유리 위를 걷고 있는 듯 위태로워 보여요.

유리로 뭔가를 만들기도 전에 와장창 깨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제가 볼 때 아빠가 저넷에게 진짜 아빠 노릇을 한 건 저넷이 대학 등록금이 부족할 때 자신의 남루한 외투 속에 꼬깃꼬깃 모아둔 쌈지돈을 준 게 아닐까 싶어요.

아무리 저넷의 엄마와 아빠가 아이들을 사랑했다고 해도 현실적으론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부모였던 건 부인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넷은 훌륭하게 성장했고, 다른 형제들도 각자의 인생을 살고 있어요.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엄마 대로 자식에게 어떤 도움도 바라지 않고

원하는 삶을 살고 있고요. 한때는 부끄러웠던 가족사를 세상에 드러냈다는 건 정말 멋진 용기라고 생각해요.

저넷 월스의 인생은 아빠의 유리성과는 달리 바위처럼 굳건한 성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잘 견뎌낸 당신에게 박수 쳐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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