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 3분 전 바다로 간 달팽이 19
김리하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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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의 운동화가 보이시나요?

추락 3분 전...

네, 예상하는 그게 맞습니다.

김리하 작가의 단편소설집 속에는 아슬아슬 위태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합니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의 심정은 오죽할까요.

하지만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감히 말하지 않겠습니다.

각자 자신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거니까...그러니까 아무리 힘들어도 온전히 혼자 감내하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서 부끄러워졌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고통을 나눌 수도 있었는데 외면했던 건 아닐까라는.

<추락 3분 전>은 열여덟 살 세호가 이불이 널려 있는 베란다 밖으로 몸을 던지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유서 한 장 없이, 그저 엄마에게 미안하다고 중얼거리면서....쿵!

다음 장면은 병원, 놀랍게도 세호는 찰과서 하나 없이 말짱하게 살아납니다. 뭐지, 기적인가?

며칠 뒤 세호의 핸드폰으로 발신 번호 표시가 제한된 전화가 걸려옵니다. 다짜고짜 "최세호 씨, 임무 전달받으십시오."라며 수화기 너머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그는 세호가 아파트 9층에서 떨어졌는데도 죽지 않고 살아난 건 누군가 사력을 다해서 떨어지는 세호를 등으로 받아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누군가 세호를 위해 등을 내주었듯이 세호도 투신자살하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등을 대주는 임무를 하라는 것. 즉, 자살 방지 조력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잠시 후, 띠링. 문자 메시지에는 - 21세 여자. 삼수생. 성적 비관으로 자살 결심. 00아파트. 신발 벗기 1분 전. 추락 3분 전.

문자를 확인한 세호는 너무도 황당하고 무서운 나머지 외면해버립니다. 뒤이어 쿵!  추락사...  충격에 빠진 세호는 핸드폰을 던져 버리고, 엄마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퍼붓고 맙니다. 엄마는 생전 처음 세호의 뺨을 때립니다. "네 잘못이 뭔지 모르겠어? 정말 몰라? 왜 몰라? 네가 살아야 할 이유를 못 찾는 거, 그게 네 잘못인 거야. 살아. 죽을 것 같이 힘들어도 살아. 살아야 할 이유를 죽기 살기로 찾아. 살다보면...... 살아야 할 이유를 알게 될 거다. 너는, 너만은 그럴 수 있어." (35p)

정신을 차린 세호가 다시 휴대폰을 켰을 때, 띠링. 문자메시지가 뜹니다. 누군가의 추락 3분 전을 알리는.  세호는 이번에는 두 눈을 감고 온 마음을 집중합니다. 그러자 추락 3분 전 누군가가 있는 장소로 순간이동한 세호는 천천히 허리를 구부리고 진심으로 그 사람이 살기를 바랍니다. 쿵! 자살예정자가 떨어지는 순간 세호의 등에 전해진 무게가 고스란히 통증으로 바뀝니다. 살려냈다!

세호가 자신의 몸을 바쳐서 자살 예정자를 받아 낸 순간, 그의 고통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에 그가 살아난 것입니다. 세호가 강력한 삶의 의지를 그에게 전달해준 것입니다.

자살 방지 조력자가 된 세호는 조금씩 세상 밖으로 걸어나올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띠링. - 45세 여자. .... 누구인지 짐작하셨나요. 세호의 엄마... 언제나 강하다고 생각했던 엄마가 떨어졌습니다. 세호는 간절하게 엄마를 위해 허리를 굽혔습니다.

울컥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던진 게 아니라 세상이 자신을 버린 거라고 느낀 거였구나. 그냥 등을 내어주고, 고통을 조금이나마 나눠주면 되는 거였구나.

<쇼퍼홀릭>에는 회사에서 잘리기 직전까지 몰린 위기의 아빠 곁에 든든한 아들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이중생활을 권함>에는 날라리 대학생 형의 여자친구 지윤 곁에 착한 고딩 교진이 있습니다.

<설단 현상>에는 교육 컨설팅 엄마를 둔 탓에 공부 기계가 되어버린 세진 곁에는 마음 따뜻한 아줌마가 있습니다.

<상상 철물>에는 한순간 왕따가 되어버린 지빈 곁에는 정육점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진심으로 나의 고통을 나눌 한 사람만 있다면.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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