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아이 2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1권을 읽고 어쩌다보니, 한참 뒤에 2권을 읽었습니다.

첫 장면에 등장했던 '해변의 여인 살인 사건'은 거의 잊혀졌고, 마리가 왜 다른 여섯 명의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건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은 콩슬룬 고아원 밖으로 입양됐고, 마리만 남겨졌습니다. 물론 마리도 콩슬룬의 마그다 원장님에게 입양되었으니까 완전히 버려진 건 아닙니다.

하지만 냉정한 마그다 원장님이 마리에게 진짜 엄마 같은 사랑을 주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기형적인 얼굴과 몸 때문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했던 마리에게 유일한 친구는 막달렌뿐.

비록 소설이지만 고아원에서 생애 첫 시기를 보낸다는 것, 그리고 입양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아픔인지 아주 조금은 이해할 것 같습니다. 유독 입양아들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 면이 있지만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절대 모를 진심을 보여준 것만은 확실합니다. 우리는 아기가 태어날 때, 생명의 신비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아기가 자신을 낳아준 엄마, 아빠의 얼굴조차 모른채 평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건 삶의 중요한 한 조각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절대로 완성되지 않을 퍼즐처럼. 아무리 퍼즐을 찾으려고 해도 찾을 수 없다면 그 절망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 않을까요.

마리는 미스터리한 일곱번째 아이를 찾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여섯 명의 아이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몰래 관찰했습니다. 마리는 자신의 인생을 꿈꾼 적이 없어 보입니다. 콩슬룬 안에 살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만 좇은 것 같습니다. 왜 이토록 집착할까. 그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이 마지막에 가서야 뚜렷하게 보였습니다.

2001년 9월 11일, 해변에서 발견된 죽은 여인 그리고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과 함께 무너진 수많은 사람들.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난 것은 모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곱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축복받으며 태어나지 못했지만 행복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는데, 그들 중 누구도 행복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언제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살아 있는 동안 후회없이 사랑했으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덮고나니 생각이 많아지는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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