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번째 아이 1
에리크 발뢰 지음, 고호관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5월
평점 :
절판


미스터리 소설은 퍼즐 게임 같습니다.

흩어진 조각들을 찾아서 원래 자리에 맞춰야 진짜 그림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어쩌면 독자들은 모든 퍼즐 조각을 맞춰 완성했을 때의 쾌감을 맛보기 위해 미스터리물에 빠지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소설은 미스터리물이 아닙니다. 저도 처음에는 깜박 속았습니다. 책 띠지에 소개된 글귀만 보고 말이죠.

덴마크 시사 저널리스트 에리크 발뢰의 경이로운 데뷔작.

신랄하고 극적인 미스터리 정치 범죄 소설!

우선 사실 여부만을 따진다면 저자에 관한 소개는 맞습니다. 30년 경력의 시사 저널리스트라는 점, <일곱번째 아이>가 데뷔작이라는 점.

그런데 살인사건과 함께 정치인들이 등장한다고 해서 '미스터리 정치 범죄 소설'이라는 건 너무 억지스럽습니다.

저자가 원래 이 소설을 구상했던 건 자신이 기자로서 취재했던 경험과 어린 시절 고아원에서 자란 체험이 합쳐진 것이라고 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건 '일곱번째 아이' 이자 '일곱 명의 아이'입니다. 저자에 관한 소개글을 보니 에리크 어머니는 임신한 상태에서 남자에게 버림받고 우울증을 겪으며 자살 시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 곁을 떠나 2년 동안 고아원에서 자랐고 입양아가 될 뻔 했지만 다시 어머니 곁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았다고 합니다. 그 때의 기억들이 '입양'이라는 소재로 이 소설을 그려낸 것입니다. 흔히 소설가들의 데뷔작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투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평범하지 않았던 저자의 어린 시절이 마치 이 소설의 일곱 아이들을 통해 생생히 되살아난 것만 같습니다.

1권만 읽었을 때는 미스터리물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사건에 집중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한 여인이 스코스보르 해변 호텔과 벨레뷔 해변 사이에서 발견됩니다. 죽은 여인은 해변 모래밭에 얼굴을 박은 채 엎드려 있었고 팔은 뒤로 꺾여 두 손바닥이 벌린 채였습니다. 경찰은 살인 사건으로 추측했지만 사망자의 신원도 밝히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맙니다. 그건 바로 그 날, 납치된 비행기 두 대가 뉴욕의 110층짜리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전세계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테러 사건으로 인해 '해변의 여인 살인 사건'은 작은 일간지 두 곳에 겨우 몇 줄짜리 기사만 남기고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또한 첫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1권을 읽는 동안 이 사건은 서서히 잊혀집니다. 아무런 단서도 없을 뿐더러 1권에서는 다시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죠. 1권에서는 주인공 마리가 일곱번째 아이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과정이 그려집니다.

저자는 마치 이 소설이 현실 속 사건인 것처럼 이야기합니다. 60년에 걸쳐 고아가 된 아이들 수만 명이 살았던 곳, 콩슬룬 고아원에서 벌어졌던 일, 이른바 '콩슬룬 사건'이라 불렸던 그 사건을 취재한 기자인 것처럼 말이죠.

"나는 마리가 기록한 공책을 바탕으로 콩슬룬 사건을 직접 조사했다. 특히 마리가 콩슬룬에서 생후 몇 개월을 함께 보냈고, 꽤나 집착했던 여섯 아이들의 삶을 기록한 부분에 집중했다. 몇몇 사건은 직접 조사해서 콩슬룬 사건을 다시 풀어보았다." (10p)

어쩌면 그는 이 소설에서 스스로를 숨겨진 여덟번째 아이로 상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아원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얼마나 강렬했으면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이끌려 몇 번이나 고아원을 방문했을까요. 왠지 마음이 애잔해집니다. 고아원 유아실에 있었던 일곱 명의 아이들, 그리고 입양된 이후의 삶을 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축복받지 못한 탄생 그리고 사랑받지 못한 존재. 고아들에게는 자신의 뿌리, 친부모를 찾는 일이 인생 최대의 사건과제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가를 떠올리면 소름이 돋습니다. 인간은 정말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처음 예상했던 미스터리물은 아니었지만 마지막까지 집중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습니다. 나름의 반전을 보여준 건 저자의 신중한 성격 때문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봅니다. 살짝 비틀기를 시도했지만 놀라움보다는 쓸쓸하고 슬픈 건 왜일까요. 결론은 슬펐습니다. 퍼즐을 다 맞췄지만 완성된 그림은 제가 원하던 그림이 아니었다는 허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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