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루 푸른도서관 50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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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엄마노릇을 십여 년 하다보니 엄마의 마음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

엄마의 딸로 살 때는 몰랐던 마음을 직접 겪어보니 저절로 깨닫게 된 것이다. 어떻게 엄마는 참고 사셨을까? 만약 엄마로서의 삶을 미리 알았다면 자신있게 엄마가 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여자는 엄마가 되어야 진짜 인생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과거에는 엄마들이 지금보다 더 많은 희생을 하셨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것 같다. 그나마 지금은 엄마라고 해서 무조건 희생하거나 무시당하는 일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직업을 택하라면 '엄마'가 아닐까 싶다. 아무도 '엄마'로 태어나는 사람은 없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났고, 누군가의 아내가 되어 그다음에 누군가의 엄마가 된 것이다.

<신기루>는 열다섯 살 다인이가 엄마와 엄마 친구들이 가는 여행에 따라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다. 5박 6일의 몽골 사막 여행이란 점도 특이하지만 중학생 딸래미를 데리고 친구들과의 여행을 간다는 설정이 재미있다. 다인이가 엄마의 여행에 끼게 된 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만약 여행지가 유럽이었다면 좀 달랐겠지만 몽골의 사막이라니, 다인이의 입장에선 별로 기대할 것 없는 여행일 것이다. 그런데 지루할 것 같던 여행에 한줄기 오아시스처럼 등장한 가이드 바뜨르는 다인이가 좋아하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와 너무나 닮았다. 콩닥콩닥 두근두근, 사춘기 소녀를 설레게 한 바뜨르와의 즐거운 만남은 바뜨르의 부상으로 어이없이 끝나버린다.

다인이와 엄마, 그리고 엄마 친구들의 모습은 어쩐지 너무도 친숙하다. 옥신각신 싸우는 엄마와 딸의 모습이나 아줌마가 되어도 변하지 않는 소녀 감성의 친구들의 모습이 모래먼지 날리는 사막에서 더욱 또렷하게 드러나는 듯 하다. 집이라는 친숙한 공간에서는 다인이의 엄마만 존재하지만 머나먼 몽골 사막에서는 엄마가 아닌 숙희로 존재한다. 다인이는 그걸 알까? 아마도 다인이는 모를 것이다. 엄마가 왜 이 여행을 서둘러 떠났는지를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어머니가 더 나이드시기 전에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엄마와 단 둘이 떠나는 여행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그동안 왜 한 번도 엄마와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을 못했을까? 아이를 낳고 살다보니 '엄마'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울컥할 때가 있다. 늘 내 곁에서 지켜봐주실 것만 같은 든든한 엄마가 이제는 주름진 할머니의 모습이 되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정말 더 늦기 전에 꼭 엄마와 함께 떠나고 싶다.

다인이가 엄마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기에는 아직 어리지만 몽골이라는 공간이 엄마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것 같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엄마의 삶을 잠시 내려놓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우리는 각자 누군가의 무엇으로 살다가 정작 자기 자신으로 사는 걸 잊는 것은 아닌지.

우리 삶의 신기루는 어디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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