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세계문학의 숲 1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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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연히 성경 속 '욥'이 등장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흠 없고 올곧은 인물인 욥은 사탄의 부추김 때문에 시련을 겪게 된다. 신앙인들 중에는 많은 이들이 고통이나 불행을 겪을 때 '욥'을 떠올리며 이겨낸다고 말한다. 솔직히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못한 터라 궁금한 마음에 읽어 보았다. '욥'의 불행은 명백히 사탄이 하느님의 종을 괴롭히려는 사악한 술수였다. 다만 당사자인 '욥'만 모를 뿐이다. 사탄은 하느님께 욥에게 준 모든 행복을 앗아가면 틀림없이 신을 저주할 거라고 말한다. 그는 끝까지 하느님을 경외하려고 애쓰지만 점점 심해지는 시련 앞에 절망한다. 그리고 왜 악인들은 오래 살며 더 행복한지를 되묻는다. 하느님의 축복을 받으며 행복할 때는 몰랐던 의심과 불경한 마음이 커져간다. 불행 앞에 인간은 가장 근본적인 존재 이유를 생각하게 된다. 종교를 가진 분이라서 '욥'의 비유를 든 것이지만 우리 삶의 불행을 떠올리면 아무도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할 이유는 눈곱만큼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불행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욥'처럼 마지막에는 참회하여 운명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지만 세상 일이 모두 해피엔딩은 아닌 것을.

시공사에서 새로 출간된 세계문학전집 중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을 읽게 됐다. 오랜만에 읽는 세계문학이라 기대가 컸다. 아무래도 책을 소개하는 거창한 문구들을 보면 당연한 기대감일 것이다. 2002년 노벨연구소가 선정한 54개국 작가가 뽑은 최고의 세계문학 100선 중 한 권이며, 대도시를 현대의 바빌론으로 묘사한 표현주의 시대의 대서사시로써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에 비견되는 독일어로 현대를 묘사한 가장 중요한 작품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첫 장을 펼치면서 조금 당혹스러웠다. 독일문학이 낯선 탓일까? 아니면 알프레트 되블린이라는 작가의 표현방식이 색다른 탓일까? 정말 기존에 읽던 작품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야기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마치 독립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평범한 관객으로서 미처 다 이해하기 힘든 전개였다. 세밀한 묘사에 이은 등장인물들의 대화, 그리고 아담과 이브과 등장하는 성경 이야기 한토막, 가장 중요한 주인공 프란츠 비버코프의 존재감은 실로 미약하다. 전혀 호감을 주지 못하는 인물이라 처음에는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감옥에서 나와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신문을 팔며 생활하는 프란츠와 그가 만나게 되는 주변 인물들까지, 정말 그 중에서 인간적인 매력을 가진 이가 한 명도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렇게 투덜대면서 계속 읽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프란츠의 불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프란츠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내던지며 타오르는 불꽃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다. 모든 고통이 사라지길 바라면서, 자비로운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다. 과연 고통 속에서 그의 마지막 바람은 이루어질까?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은 프란츠의 불행, 그가 겪는 고통과는 무관하게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야속하다해도 어쩔 수 없다. 그는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의 주인공이다. 비운의 주인공, 프란츠 카를 비버코프의 마지막은 예상했던 대로다.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삶은 계속된다. 그것이 프란츠가 우리에게 보여준 인생이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이다. 힘겹게 읽은 만큼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욕은 그만두고 마음에 태양을 지녀요."  (38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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