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 처음으로 읽는 조선 궁중음악 이야기
송지원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학창시절 특별활동으로 가야금을 배운 적이 있다. 전교생을 대상으로 2주에 한 번 뿐인 시간이라 제대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매우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국악에 대한 관심도 생기고 가야금의 아름다운 선율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도 아쉬운 것은 졸업과 함께 잊혀졌다는 사실이다.

클래식 음악도 그렇지만 국악은 특히나 일반인들이 다가가기엔 멀게 느껴지는 것이 현실이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방과후 활동으로 단소와 같은 국악기를 가르치고 있지만 일상에서 국악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가르치고 배우는 곳은 있지만 함께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기 때문은 아닐까.

국악에 대한 이런저런 아쉬움과 관심이 이 책을 읽게 한 것 같다. < 장악원, 우주의 선율을 담다 >라는 거창한 제목 속에는 조선 시대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담겨있다. 장악원이라는 조선의 궁중음악을 담당하던 기관을 중심으로 조선의 궁중음악과 음악인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부분 역사적 문헌을 근거했기에 다소 딱딱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읽어갈수록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는 계기가 된 것 같다. 장악원은 조선 시대 왕실의 행사인 각종 의례에서 음악을 연주할 수 있도록 관리하는 곳이었고 실제 음악을 연주하는 소속 전문 음악인은 요즘말로 비정규직이었다. 간혹 이들 중에 음악 감독격인 관직이 있었지만 예나지금이나 예술가의 길은 험한 것 같다. 조선 시대의 궁중 음악은 자유로운 감성의 표출이라기 보다는 예를 중시하는 하나의 형식으로 여겨졌다. 어찌보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인데 실제로 이를 담당하는 이들의 대우는 너무도 초라했던 것 같다. 배고픔을 겨우 면할 정도의 녹봉을 받아가며 완벽한 연주를 하기 위해 끊임없이 연습해야 했고 궁중에서 열리는 온갖 행사로 바빴을 그들을 상상하니 안타깝다. 그나마 예술을 사랑하는 임금의 시대에는 뛰어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암흑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음악이 없는 시대는 상상하기 싫다. 궁중 음악을 담당하는 장악원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보면 그 시대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 시대는 여러 번의 전란으로 국가적 위기가 있었다. 음악뿐 아니라 예술도 위축될 수 밖에 없었다. 악기 제작의 어려움, 악기를 연주하는 전문 음악인의 부족 등 어려움도 많았지만 꿋꿋하게 음악을 지켜낸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책에서 소개한 조선의 대표 음악가 10인이 그들이다  - 맹사성, 박연, 성현, 임흥, 정렴, 허억봉, 허의, 한립, 이연덕, 김용겸.

그 중 임흥이란 인물은 인간적인 매력이 느껴진다. 나이 오십을 지천명(知天命)이라 하는데 평생 신선처럼 풍류를 즐기던 그가  나이 오십이 넘어 장악원 말단 관리로 들어간 것은 참으로 멋진 결정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과 하늘이 부여한 사명을 안다는 건 임흥처럼 음악과 함께 삶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뜻할 것이다. 그를 보면서 부럽고도 존경스러웠다. 음악은 누구나 즐길 수 있지만 제대로 즐길 줄 아는 이는 드물다. 평생을 음악과 함께 즐기며 살았던 모든 음악가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조선의 궁중 음악 이야기 중 인상적인 부분은 " '예'가 무너진 사회, '악'으로 일으켜라!" 이다. 임진왜란 이후 어지러워진 향촌 사회의 질서를 회복과 백성의 교화를 위해서 향음주례를 시행하려 했던 것처럼 음악은 예(禮)인 동시에 예(藝)인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도 조선의 궁중 음악과 같은 예와 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국악은 단순한 음악의 장르를 넘어선 우리의 민족 정신이다.

새삼 국악의 소중함을 깨닫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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