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르토피아 - 진주의 기억과 풍경 그리고 산책자
김지율 지음 / 국학자료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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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도시, 당신의 헤테로토피아》 는 경남 진주라는 도시에 관한 책이에요.

단순히 진주라는 지역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면 그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겐 유용한 정보는 될지언정 별다른 감흥을 주진 못했을 거예요. 근데 이 책은 헤테로토피아 도시로서 진주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감동을 주네요.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눈빛에 덩달아 설레듯이, '진주'라는 장소에 대한 사랑이 듬뿍 묻어나는 시선과 방식에 스며들게 되네요. 새삼 '진주가 이런 도시였던가?'라는 매력을 느끼는 시간이었네요.

이 책은 진주에서 태어나 자랐고 여전히 살고 있는 저자가 K와 함께 이 도시를 9일 동안 걷고 바라본 지극한 장소들에 관한 이야기예요. 평소 진주에 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저자가 유독 K와 함께 있으면 자연스럽게 옛날 기억과 정보들이 흘러나왔고, 그 때문인지 항상 진주에 오고 싶어 했던 K가 전날 예고도 없이 불쑥 여행자처럼 나타나면서 '진주' 이야기가 시작된 거예요. 한 사람에게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 있는 도시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장소들도 시간이 지나면 바뀌거나 잊혀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지키는 어떤 장소들은 지극하다. 눈이 나무 위에 조용히 쌓이고 머리카락 한 올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던 곳. 떠나왔지만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곳. 표정이나 주름처럼 자신도 알지 못하는 사이 그곳의 냄새와 정서가 내 몸에 베는 곳. 내가 사랑하는 그러한 장소를 나는 '나의 아름다운 헤테로토피아'라 이름한다." (18p)

헤테로토피아는 미셸 푸코가 『말과 사물』 에 처음 언급한 개념이라고 해요. 유토피아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장소라면 헤테로토피아는 현실에 실재하는 유토피아적 장소라 할 수 있어요. '다른, 낯선, 혼종된'이란 의미의 헤테로(heteros)와 '장소'라는 뜻의 토포스(topos)가 합쳐진 단어로, 일상의 공간과 다른 공간이란 뜻이며, 마음을 내려놓고 쉴 수 있는 곳, 누군가를 초대하고 싶은 곳, 찾아내거나 새롭게 만들어낼 수 있는 장소를 의미해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유토피아도 아니고, 디스토피아도 아니에요.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뜻밖의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만한 장소라고 느끼기도 해요. 누군가에겐 의미 없는 공간이 또다른 누군가에겐 엄청난 의미를 가져다 주는 공간이 될 수 있기에, 헤테로토피아는 현실 세계 속 나만의 공간으로 해석되며, 그 공간은 자신이 경험한 것들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사실 이 책을 읽기 전에 다큐멘터리 영화 <어른 김장하>를 보고 김장하 선생님이 50년 동안 운영했던 남성당 한약방이 있는 경남 진주시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시대 진정한 어른의 모습과 1923년 4월 진주지역을 중심으로 일어났던 형평운동의 정신을 알려준 도시라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게 됐거든요. 역시나 책에서도 첫째 날에는 남성당 한약방을, 둘째 날에는 극장을, 셋째 날에는 기차역을, 넷째 날에는 남강을, 다섯째 날에는 문화와 역사의 공간을, 여섯째 날에는 중앙시장을, 일곱째 날에는 추억의 장소를, 여덟째 날에는 역사 속의 형평 장소들을, 아홉째 날에는 골목과 함께 하는 인문 공간을 소개하고 있네요. 각 장소마다 켜켜이 쌓아온 역사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저자의 말처럼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사람과 더불어 삶을 극진히 사는 장소들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느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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