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역사 - 우리가 몰랐던 제도 밖의 이야기
세라 놋 지음, 이진옥 옮김 / 나무옆의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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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역사》는 역사학자 세라 놋의 책이에요.

다양한 주제로 살펴보는 역사 이야기는 많지만 '엄마' 혹은 '모성', 엄마 되기를 주제로 삼은 역사책은 거의 처음인 것 같아요.

거대한 서사를 다루는 역사 분야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주제였던 거죠. 왜 그럴까요.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임신과 출산, 아기 양육은 당연히 엄마의 몫이라는 사회적 묵인이 통용되었기 때문일 거예요. 오늘의 의학 추천에 따르면 임신은 건강하고 만족스러운 것, 하나의 행복한 사건이어야 하는데, 정말 그렇다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6명대로 하락하는 일은 없었겠죠. 한때 우리나라 정부에서 저출산 극복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전국 각 지역에 가임기 여성의 수를 표시한 출산 지도를 공개하여 논란이 된 것도 여성을 그저 애 낳는 도구로 보고, 저출산의 문제를 여성들의 책임으로 돌려버린 정부의 안일한 대책에 대한 분노였던 거예요.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하는 주체인 여성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임신을 별개의 사건처럼 바라보는 건 굉장히 모순된 일이에요. 여성을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이해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달라질 수 있어요.

이 책은 역사학자인 저자가 처음으로 모성을 깊이 고민하면서 시작된 연구이며, 첫아이를 허둥지둥 키우는 동안 진행되었고 둘째를 가지면서 본인의 경험이 더해져 역사서와 에세이가 결합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어요. 저자가 주로 다루었던 정치 혁명 같은 주제는 엄청난 양의 종이로 이루어진 발자취가 남아 있는데 모성에 관한 자료는 별로 없어서 작은 조각들과 일화들을 탐사하며 평범한 여성들의 잃어버린 이야기를 되살려내는 과정이었다고 하네요. 과거에 아기를 낳는 것은 어떠했는지, 즉 엄마 되기가 어떠했는지에 관한 탐구라고 볼 수 있어요. 저자가 모은 사료에는 갓난아기를 돌보는 것에 대한 어떤 선언도 없지만 어머니의 권위와 경험에 기초한 정책도 모성주의를 보수적인 시대의 페미니즘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고 이야기하네요. 대신 명사를 동사로, '어머니'라는 정체성을 '엄마 노릇 하기'로 바꿔보라고, 그러면 많은 것들이 아주 다르게 보일 거라고 하네요. 그동안 어머니와 모성애를 동일시하는 인식 때문에 희생을 당연히 요구해왔던 게 아닌가 싶어요. 본능적인 엄마 노릇 하기를 강요할 게 아니라, 이제는 사회구성원의 다양한 역할이자 노동의 한 형태로 엄마 노릇을 바라봐야 시대에 맞는 대책과 제도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다산의 요구, '울적함'의 협박, 여성의 '활동영역'에 자리한 한계는 

대가족 시대부터 단호하고 위협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 다산의 과거와 인색한 현재 사이 어딘가에, 

딜레마이자 질문으로서의 엄마 되기가 운명으로서의 엄마 되기를 대신하게 되었다." (27p)


"찬성이냐 반대냐를 결정하는 것은 숫자로 본 엄마 되기의 가장 최신 버전이고,

대단히 동시대적인 반전이다. 말하자면 그저 아이를 몇 낳을 것인가라기보다

더 정확히는 아이를 가질지 말지 정하는 것이다." (28p)


"21세기의 진화론적 인류학자들이 모든 돌봄 노동자가 애착을 갖는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출산이 돌봄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아무리 호르몬 작용에 도취한다 해도. 아이를 안는 것은 다른 것이다.

20세기의 많은 집단에서 건강한 애착은 아기 돌봄이 유지되는 받침돌이다.

임신은 선택이지만 돌봄은 결합하는 것이다. 즉 주고자 하는 마음, 보호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 아버지 되기와 아기 돌봄의 역사에 대해서 우리는 아직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325-32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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