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의 쇼핑몰 -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킬러들의 쇼핑몰> 원작 소설 새소설 5
강지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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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같이 살았는데 내가 아는 게 하나가 없네."

이동욱 배우와 김혜준 배우 주연의 드라마 <킬러들의 쇼핑몰> 1화에서 정지안(김혜준)이 삼촌 정진만(이동욱)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며 하는 대사예요. 첫 화부터 주인공의 죽음이라니 뭔가 수상하잖아요. 10년을 같이 살고도 삼촌의 비밀을 전혀 몰랐던 조카 지안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것이 흥미로웠어요. 그래서 원작이 있나 찾아봤더니, 바로 강지영 작가님의 <살인자의 쇼핑몰 1>, 2020년 2월 14일 출간된 작품이더라고요. 이상하게 이번 드라마는 유독 원작이 궁금했는데 역시나 읽는 맛이 다르네요.


"돌이켜보니 삼촌은 이상한 사람이었다.

아빠의 말에 따르면 삼촌은 중학생 시절 이미 성인처럼 덩치가 컸다고 했다.

게다가 어찌 된 일인지 이마 가장자리부터 탈모가 시작돼 언뜻 사십대로도 보였단다.

신분증 검사 없이 술이나 담배를 살 수도 있었지만 삼촌은 그런 하찮은 일에 노안을 허비하지 않았다." (7p)

소설의 첫 문장부터 삼촌 정진만의 외모 묘사가 드라마와는 상반된 느낌이라 놀랐어요. 만약 원작 그대로 캐스팅을 했다면... 음, 일단 소설로 읽을 때는 엄청나게 큰 덩치에 노안인 것이 설득력이 있지만 드라마는 시청자의 판타지를 만족시켜줘야 한다는 점에서 굿캐스팅이네요. 암튼 드라마를 시청한 뒤에 원작소설을 읽다보니 피식 웃음이 나더라고요. 아직 소설과 드라마 모두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소설을 먼저 읽기를 추천해요. 왜냐하면 소설에서 삼촌은 외모가 아닌 카리스마로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거든요.


"잘 기억해. 무는 개는 짖지 않아.

그건 짖게 만들면 더 이상 물 수 없단 뜻이기도 해요.

개를 짖게 하는 건 생각보다 어려워. 놈 앞에서 내가 강하다는 걸 증명해야 하거든."

삼촌은 수첩에 뭔가를 끼적거리며 내게 말했다.

"개랑 싸우지 않으면 되잖아."

삼촌은 정수리까지 말끔하게 벗겨진 머리에 풍성한 턱수염, 크고 선량해 보이는 눈 덕에 사람 좋은 털보 아저씨처럼 보이지만,

얇고 꽉 다문 입술에서 이따금 툭툭 터져 나오는 말들은 결전을 앞둔 갱단 두목 같았다.

"개는 어디에든 있어. 그러니 싸움을 피할 방법 같은 건 없다는 거야. 물론 네가 생각하는 개의 모습이 아닐 순 있지. 할머니는 죽음이라는 커다란 검은 개에게 물린 거야. 너는 오늘 아침에 늦잠을 자고 싶어 했지만 방학 소집에 참석해야 할 임무를 지키느라 게으름이라는 개와 싸워 이긴 거고. 너무 어려운 얘기 같겠지만 여덟 살이면 이제 세상을 알 때도 됐어." (8-9p)

삼촌 정진만이 여덟 살 조카에게 들려주는 살벌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가만히 곱씹다 보면 틀린 말이 하나도 없어요. 무서운 킬러들의 세계와 우리들의 세계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면 말이죠. 암튼 소설을 읽다가 강지영 작가님에게 반했어요. 10년 전쯤 「살인자의 쇼핑 목록」 이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살인자의 쇼핑 목록」 은 2022년 tvN 수목드라마로 방영됨), 그때 친구 T에게 다음 작품 제목은 '살인자의 쇼핑몰'로 지어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저자는 제목만 지어놓은 소설이 의외로 빠르게 시놉시스가 완성되어 신기했다고 해요. 아마 지난 10년간 아주 느리게 이 소설을 마음 어딘가에 끼적인 모양이라고, 어쩌면 정진만이라면, "강지영, 잘 들어. 세상엔 너 혼자 만족하고 끝나는 일이 아주 많아. 그러니 스스로 한 약속을 지켰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 라고 말해줄지도 모르겠다는 작가님의 말이 인상적이네요. 차곡차곡 탑을 쌓아가듯,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이야기의 매력에 흠뻑 빠졌네요. 드라마는 8부작으로 일단락됐으나 시즌2 나와야겠죠. 다음 내용이 궁금한 사람들은 2권에서 확인하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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