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클래식 리이매진드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티나 베르닝 그림, 이영아 옮김 / 소소의책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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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문 보이십니까?"

그가 물었다.

어터슨이 그렇다고 답하자 엔필드는 덧붙여 말했다.

"저 문을 보니 기묘한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17p)


소설을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묘사된 장면들을 떠올리게 돼요.

낯선 이야기도 익숙한 이미지로 바꾸면 좀 더 깊숙히 빠져들게 되거든요.

근데 이 책은 뭔가 특별하게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내면의 심리를 드러내고 있어요.

만약 그림만 봤다면 줄거리를 설명할 순 없어도 불안하고 두려운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대단히 섬세하고 감각적인 그림들을 그린 사람은 티나 베르닝, 여성 인물화로 이름을 알린 독일의 화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라고 하네요.

그녀가 그린 작품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예요. 하이드 씨의 악행이나 극적인 사건을 묘사하는 배경 그림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봐도 무방한 그림들이 책장을 넘길 때마다 순차적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첫 장부터 강렬하게 빨간색으로 물든 저택이 보이고, 계단 옆으로 어둠에 가려진 신사의 실루엣이 드러나네요. 검은 빗줄기처럼 보였던 선들이 어느덧 빨간 핏줄마냥 사방으로 뻗어 있어요. 그 빨간 줄은 다음 장에도 어디선가 시작되었다가 숨었다가 때로는 검은 줄, 하얀 줄로도 표현되고 있어요.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도 제목 속 두 인물이 누구이며, 무엇을 상징하는지는 알고 있을 거예요. 워낙 연극과 영화, 드라마, 뮤지컬로 많이 각색되어 대중들에게 꾸준히 사랑받아온 작품이니까요. 그러니 또다른 번역본의 책이 나온다고 한들 새로울 건 없다고 여겼는데 직접 보니 완전 반전이네요.

소소의 책에서 출간된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는 클래식 리이매진드 시리즈로 컬렉터용 하드커버 에디션이라고 하네요.

훌륭한 원작에 대한 소감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이 유명한 작품을 티나 베르닝이라는 화가가 시각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신선하고 특별했어요. 티나 베르닝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에서 여성은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작은 단역만 맡고 있다. 내 안전지대를 벗어나 어두운 일면을 관조하며, 파멸의 어두운 추상성과 이 고딕풍 이야기의 음울한 아름다움을 시각화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205p)라고 했는데, 티나 베르닝 방식의 해석이 굉장히 강렬하게 다가와서 좋았어요.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위선과 억압적인 사회에서 인간의 이중성을 포착해낸 원작의 탁월함이 감각적 그림들로 인해 더욱 빛나는 것 같아요.


"지금껏 어떤 이도 이런 고통을 겪은 적이 없다는 말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

그런데 이런 고통도 습관처럼 반복되다 보니 영혼이 조금 무감각해지고,

절망도 어느 정도 묵인하게 되더군. 그렇다고 고통이 가라앉은 건 아니지만 말일세.

이런 형벌이 몇 년이나 더 계속됐을지도 모르지만,

마지막으로 닥친 재앙이 기어코 나 자신의 얼굴과 본성으로부터 나를 끊어놓았네."

    (19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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