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녀를 모른다
로지 월쉬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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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종종 속눈썹이 젖은 채로 잠에서 깬다. 

마치 슬픈 꿈이 넘실대는 바다를 유영하다 온 사람처럼.

그리고 말한다. "그냥 잠을 좀 설쳐서 그래. 난 악몽 안 꿔." 

엠마는 깊고 깊은 하품을 하며 눈을 비빈 후 미끄러지듯 침대를 빠져나가 딸 루비가 숨을 잘 쉬고 있는지 확인하러 간다. 루비가 세 살이 된 지금까지도 버리지 못한 습관이다.

그러고 나면 돌아와 이렇게 말한다. "레오! 그만 자고 일어나! 키스해줘!"

더디게 흐르는 심연에서 깨어나 하루가 시작되면, 찰나의 순간들이 찾아온다. (14p)

 

 

소설의 첫 부분이에요. 다 읽고 나면 이 장면이 얼마나 의미심장한지를 깨닫게 될 거예요. 

수미상관법으로 보여준 것이 예술인 것 같아요.

《나는 그녀를 모른다》는 로지 월시의 장편소설이에요. 이 작품은 출간 즉시 <뉴욕타임스>와 독일 아마존 베스트셀러 TOP 10에 오른 화제작이라고 해요. 신기하게 제목만으로도 독자를 유혹하는 작품들이 있어요. 뻔히 다 보여주는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건 살짝 감춰버려서 안달나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 전략 같기도 해요. 결론적으로 아주 흡족한 미스터리 심리 스릴러 소설이라고 소개하고 싶네요. 그 이유는 스릴러 외에도 로맨스가 포함되었기 때문이에요. 엠마와 레오의 침대 위에서 시작되는 이야기, 겉으론 화목하지만 뭔가 수상한 것들이 드러나면서 갈등이 극에 달하는 과정들이 쫄깃쫄깃하네요. 아마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둥둥 떠다닐 거예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에 비밀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어요. 상대에게 모든 걸 다 말해줄 수 없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니까, 적절하게 편집해서 일부의 진실만을 알려주는 경우들이 생기곤 해요. 의도적으로 숨기진 않았지만 마음 한편이 불편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본인도 싫어하는 자신의 모습을 굳이 상대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되는 진실이 있어요. 그건 '나도 나를 모른다'라는 거예요. 아무리 솔직해지려고 해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을 보여줄 방법은 없으니 말이에요. 낮과 밤처럼 눈을 뜨고 생활하는 시간과 잠든 시간을 구분하듯이 '나'라는 존재도 스스로 모르는 부분들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아요. 또한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인간이기에 서로 부족한 점들을 채워가며 살아가야 해요.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구태의연한 표현을 좋아하진 않지만 사랑이라는 영역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진실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 처음엔 제목 때문에 부부 간의 비밀이 엄청난 충격일 거라고 예상했는데 반전이 있네요. 굉장히 만족할 만한 반전이니까 너무 마음 졸이며 긴장할 필요는 없어요. 몰입감이 높을수록 그 여운이 크게 남는 편인데 이 작품은 감동을 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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