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 -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
마이아 에켈뢰브 지음, 이유진 옮김 / 교유서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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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은 바닥을 닦으며》는 어느 여성 청소노동자의 일기예요.

책 제목은 비유가 아닌 진짜 바닥을 닦는 청소 일을 의미해요. 일기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글쓰기가 시대와 사회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었다는 게 놀라워요. 우리는 종종 보통사람들의 힘을 간과할 때가 많아요. 세상에는 드러나지 않는, 숨은 영웅들이 있어요. 진짜 세상을 끌고 가는 건 그들이고, 반대로 망가뜨리는 건 소위 권력을 지닌 자들이에요. 오늘도 책임을 회피하고 전가하는 공직자들이 떠들어대고 있어요. 손바닥 뒤집듯이 매번 말을 바꾸면서도 자신들의 말과 반대되는 의견은 모두 가짜라고 우기고 있어요. 힘 없는 노동자,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적어도 노동자들은 제 몫의 일을 미루거나 떠넘기지 않아요. 성실하게 묵묵히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이에요. 반면 본래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면서 국민들을 가르치려고 드는 정부는 뭔가요. 건설노동자들은 하루 한 명 꼴로 죽어가고 있는데, 정부는 취약한 노동자들을 약탈집단으로 규정하고 공권력의 칼을 휘두르고 있으니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묻고 싶네요. 노동자들도 똑같은 인간이고 시민이라고요.

이 책의 저자인 마이아 에켈뢰브는 1918년 스웨덴에서 태어났고, 6년 초등과정을 마치고 야간학교 강의를 통해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고 해요. 1940년에 굴착기 작업자 토슈텐 에켈뢰브와 결혼해 5남매를 두었으나 1957년 이혼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랫동안 청소노동자로 일했는데, 스웨덴의 유명 출판사 라벤 오크셰그렌의 '정치소설 공모전'에 그동안 썼던 일기로 응모하여 최우수상을 받았고 이어 출간된 책이 큰 성공을 거두었대요. 1970년 52세에 일기소설로 데뷔했고 초판 발행 연도에만 6판 인쇄, 스웨덴 10대 베스트셀러 중 하나가 되었으며 이후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페르시아어로 번역되었대요. 1987년 스웨덴노동조합총연맹이 주관하는 문학상인 '이바르 루상'을 받았어요. 1989년 칼스쿠가에서 사망했고, 2019년 30주기를 맞아 그녀의 이름을 딴 '마이아 에켈뢰브 광장'이 칼스쿠가에 생겼다고 하네요.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스웨덴 복지에 감탄했네요. 저자는 오래 전 어린 네 아이의 예방접종을 하던 날의 한 장면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어요.

"마이아, 지금요. 지금 시청 사회복지과에 가면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11p) 그녀는 당시 신문을 읽을 시간도 없었는데, 이웃 사람이 스웨덴 사회의 시민들이 받을 사회적 혜택, 즉 주택보조금, 육아수당 등등을 신문에서 읽고 알려준 거예요. 아동복지 담당공무원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옷의 목록을 작성하라고 했는데, 저자는 펜을 쥔 채 아무것도 적지 못하고 있어요. 그 이유는 1953년 한국전쟁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에요. 한반도에는 얼마나 많은 재킷이 필요할까를 걱정하다가, "바지 한 벌과 재킷 한 벌" (14p)이라고 적었다고 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지만 마이아는 진짜 마음이 부자인 것 같아요. "빈민 구제라는 말은 사회복지라는 말로 바뀌었다. 신청자 귀에는 빈민 구제만큼이나 나쁘게 들리는 센소리 명칭이다. 만일 인간이 이상해지지 않는다면 세상은 절대로 이상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권력욕으로 가득하여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다란 차이는 늘 존재할 것이다." (19p) "그녀는 서명이 공식적임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었을까, 아니면 우리가 처한 형편없는 경제 사정을 상기시키는 것을 즐겼을까. '사회복지사'와 '사회복지대상자' 사이의 관계는 민감하다...... 갑-을...... 사회복지대상자를 처음 방문할 때 공무원은 우리 모두 같은 배에 타고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사회복지대상자입니다. 우리는 모두 인간이다." (296p) 나름 복지가 훌륭한 스웨덴이지만 사회복지 대상자가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보여주네요. 약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으면 사회복지도 폭력이 될 수 있어요. 마이어는 가장 낮은 곳에서 수없이 더러운 것들을 닦아냈고, 그 일은 세상을 구원하진 못해도 깨끗하게 만들었어요. 우리 역시 쓰레기를 치워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1968년 2월 13일

곧 쉰 살이 된다. 라디오에서 <말린의 책 소개>를 들었다.

셸 순드베리는 『혼란스러운 시민』이라는 책을 썼다. 그 책을 꼭 일어야 한다.

『버진』의 주인공은 우편함 옆에 서서 불필요한 것들을 삽으로 떠낸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이 책의 내용이었다. 스티그 칼손이 이 책을 평했다.

나 역시 불필요한 것들을 쉬지 않고 퍼낸다고 생각한다. 잘 자요.

"그대들이 인간 중 가장 무거운 고난의 짐을 진 누군가를 안다면

내 고통은 그의 고통과 비슷할 것이요." - 호메로스 (136p)


청소부로 산다는 것

제길, 만일 대부분의 사람이 직업을 청소부로 상상한다면 그렇게 말할 것이다.

저 말은 기분이 나쁘다. 먼지와 더러운 구정물 냄새가 느껴지다시피 한다.

아픈 허리와 튼 손도 생각한다. 이 일은 저임금 직업군에 속한다.

아마도 온갖 힘든 작업은 다 할 것이다.

청소부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너무 고된 일이라 누구라도 끝낼 수가 없다...... 건강해야 한다.

온몸이 부서진다(닳아빠진 허리와 부어터진 손, 아픈 무릎의 대가는 누가 치를까?)

더 이상의 수고를 들이지 않고 좀더 쉬운 청소 작업은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로 먹고 살아야 한다면 더 쉬운 작업과 더 힘든 작업 모두 맡아야 한다.

허리를 곧게 펴고 일해야 한다. 해야 할 모든 일을 해내기 위해 한 가지 일에 집중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진절머리가 나도 이 일은 중요하다고 여긴다...... 만일 모든 것이 깨끗하게 유지되지 않는다면 황폐해진다.

환경미화원들이 일주일 동안 파업했을 때 뉴욕의 모습이 어떨지 생각해보라.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다면 도시는 이내 파괴된다.

생일을 맞기 전에 마지막으로 오늘 아침 직장에서 청소를 했다.

14일 동안 휴가를 보냈다. 집에서 청소를 해야 하지만 집 청소는 '인형의 집 청소'라고 부른다.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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