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사람
김숨 지음 / 모요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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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사람》은 김숨 작가님의 장편소설이에요.

664쪽의 이야기, 책으로 보자면 긴 분량이지만 우리 역사로 보면 극히 일부분일 거예요.

이 소설은 해방 전후 부산의 풍경과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어요. 부산이 고향이어서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지만 일본과 만주에서 해방 소식을 듣고 귀환하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데 팍팍하고 고단한 삶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어요. 그들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문득 이름을 적어보았어요.

천복, 동수, 석분, 말똥, 가쓰코, 쑥국, 붙들이, 도끼, 간난, 막자, 옥분, 봉금, 애신, 갑동, 상희, 복순, 장숙, 순애, 명순, 양춘이, 쇠돌, 덕순, 울순, 두꺼비, 공점, 개나리, 구북, 윤수, 매숙, 연희, 목순, 석구...... 그밖에도 익명의 사람들이 굶주림을 견디며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어요. 봉금은 광목 포대기로 둘러 업은 애의 엉덩이를 토닥이며, "울지 마라, 집에 가 흰쌀밥 줄게." (81p)라며 달래지만 아이에게 줄 흰쌀밥은 그 어디에도 없어요. 타지에서 온 천복은 부두를 배회하며, "아, 누가 날 여기에 데려다놨을까!" (241p)라며 탄식하고 있는데, 그를 데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천복은 철로 위에 아이인지, 어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 분간이 안 되는 사람이 아지랑이처럼 소리 없이 떠올라 아른거리는 걸 보았어요. 그가 본 것은 무엇일까요, 아니 누구일까요.

먹고 살기 위해 소란스러운 세상과는 대조적으로 청요릿집 사해루의 어항에는 항상 금붕어 여덟 마리가 있어요. 손님들은 사해루의 어항 속 금붕어들이 한 마리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줄 알고 있어요. 그래서 환갑노인이 그 어항 속을 들여다보며, "저 물 속이야말로 완벽한 세계로구나!" (395p)라고 탄복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근데 거기엔 비밀이 숨겨져 있어요. 사해루 주인이 '8'은 자손을 번성하게 하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숫자라고 철석같이 믿는 바람에 어항 속 금붕어가 죽으면 여덟 마리에서 모자란 만큼 날마다 채워 넣었던 거예요. 사해루에서 일하는 주방 찬모는 주방 일뿐 아니라 죽은 금붕어 치우는 일도 해야 했는데, 하루도 금붕어가 죽지 않는 날이 없어서 매일 금붕어 장수가 찾아왔어요. 주방 찬모로 일하는 사마귀 난 여자는 문득 어항 속 금붕어들을 들여다보다가 금붕어들이 똑같이 생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다 똑같아서 어느 금붕어가 죽었는지 알 수 없고, 그래서 어느 금붕어가 죽어도 상관 없고 슬프지 않았어요. 그녀는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했어요. "어항 속 세계가 완벽한 것은 금붕어 수가 여덟 마리여서가 아니라, 금붕어들이 부부로도 부모 자식으로도 결코 엮이지 않아서라고." (468p) 그러나 현실은, 부산이라는 공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금붕어들이 아니라 인간이니까, 누군가의 이웃이고 친척이고 부모 자식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나몰라라 외면할 수 없는 거예요. 이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해방 직후 시대를 살지 않았지만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질 거예요. 잊고 있었던,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결국 우리의 생생한 역사였음을 기억하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제78주년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대통령은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라고 언급했어요. 일본은 아직까지 한반도 불법강점의 역사를 제대로 반성하고 사죄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대통령 마음대로 우리 역사를 부정하고 일본과 손 잡겠다는 건가요. 대통령 눈에는 우리 국민들이 금붕어들로 보이는 건가요.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는 망언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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