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이, 학원
배명은 외 지음 / 빚은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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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손에 꼽는 공포 영화 중 하나가 <여고괴담>이에요.

그 이유는 학교를 배경으로 한 괴담 속에 잔인한 현실을 녹여냈기 때문이에요. 어른이라면 거의 대부분 겪었을 고등학교 시절, 아무도 대놓고 말하지 않는 어둡고 저열한 비밀들이 공포 이야기로 재탄생했다는 점에서 묘한 쾌감이 있었네요. 그 뒤로 학교라는 장소는 공포 영화의 메카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도 당연한 듯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우리의 교육 현실은 <여고괴담> 1편의 귀신처럼 하나도 바뀐 게 없어요. 수능 킬러문항을 없앤다고 사교육이 사라지고, 교육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착각이 귀신보다 더 무섭네요.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가 대치동 학원가라면, 소설 속에는 서울이 아닌 월영시에 있는 학원이 주무대예요. 지하부터 차근차근 각 층마다 괴이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어요.

《괴이, 학원》에는 학원에서 펼쳐지는 섬뜩하고도 잔혹한 다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우선 책 표지 디자인에 감탄했네요. 일러스트레이터 최경식 작가님이 그린 표지 뒷면에는 '월영시 안내도'가 그려져 있어요. 바다에 인접한 도시로 강을 사이에 두고 공장 지역과 도심 지역이 나뉘어져 있어요. 안내도를 통해 학원의 위치를 찾다보면 어느새 월영시가 가상의 도시가 아닌 실재하는 장소처럼 느껴져요. 학교에서 시작된 괴담이 이번에는 학원에서 펼쳐진다는 게 꽤나 설득력 있는 요소였어요. 입시 경쟁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겐 학교나 학원이나 달갑지 않은 장소일 텐데, 괴담이 더해져서 대놓고 싫어할 수 있게 된 거죠. 공포를 빌미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 싶어요.

이 책은 '괴이학회'에서 만든 '괴이 시리즈'의 연장선으로 가상의 도시인 월영시에 있는 학원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예요.

지하층은 배명은 작가님의 <나를 구해줘>, 1층과 2층에는 김선민 작가님의 <특별 수업>, 3층은 은상 작가님의 <얽힘>, 4층에서는 정명섭 작가님의 <4층의 괴물>, 5층은 김하늬 작가님의 <이영의 꿈>이 수록되어 있어요. 순서대로 올라가도 되고, 무작위로 골라 봐도 상관이 없어요. 어디서 시작하든 결국에는 모든 이야기를 읽게 될 테니까요. 참으로 걱정스러운 건 공포 괴담보다 현실이 더 끔찍해서 사람들의 감각이 무뎌지는 거예요. 소름돋을 정도의 공포감을 느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어요. 공포의 실체, 외면하지 않고 마주해야 바꿀 수 있을 테니까요. 정상적이지 않은 괴이함은 부디 현실이 아닌 소설에서만 볼 수 있기를.


"어떻게 1층부터 꼭대기까지 전부 학원이야? 징글징글하다."

"그러게. 오죽하면 터가 안 좋은데 학원밖에 안 되겠어." (1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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