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
헬레나 애틀리 지음, 이석호 옮김 / 에포크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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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바이올린 연주를 듣다가 소름돋는 전율을 느낀 적이 있어요. 뭔가 절규하듯 고백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때부터 클래식 악기들 중에서 단연 독보적인 스타는 바이올린이라고 생각했어요.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은 바이올린에 관한 역사 이야기를 담은 책인데, 일단 책을 펼치면 영화 같은 장면을 만날 수 있어요.

솔직히 놀랐어요. 완전 매력적인 이야기라서 말이죠. 저자는 웨일스의 자그마한 가게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듣게 되는데, 그 순간 처음으로 바이올린이 말을 한다고 느꼈대요. "바이올린의 강력한 소리에 흡사 땀구멍이 열리는 듯했고 관절에서 힘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 충격적인 감각에 넋을 놓은 우리는 우리가 알던 것보다 더 크고 거칠고 슬프고 기쁜 감정을 열망하며 바보가 되어버렸다." (10p)라고 표현했는데 그만큼 매혹되었다는 의미일 거예요. 그래서 바이올린 연주자에게 말을 걸었고, 그 바이올린이 18세기 이탈리아에서 만들어져서 러시아로 왔고, 소유했던 사람의 이름을 따서 '레프의 바이올린'으로 불렸다는 사연을 듣게 된 거예요. 여기서 반전은, 크레모나에서 제작된 바이올린인데 감정을 받아보니 가치가 한 푼도 없는 물건이라는 거예요. 레프의 바이올린이 흉터투성이 낡은 몸통을 지녔고 값어치가 떨어질지는 몰라도 저자와 친구가 느낀 전율은 진짜였다는 점에서 명품인 거예요. 연주자는 직접 바이올린을 만질 수 있게 허락해줬고, 저자는 신생아를 안듯 한 손으로는 목뒤를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는 몸을 받쳤는데 이미 몇 세기를 산 바이올린의 생명력을 느꼈다고 해요. 몇 세대를 거쳐간 모든 연주자의 DNA가 깊이 스며들어 있는 바이올린이라는 점에서 또 한번 매료된 거예요. 바이올린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한 뒤, 그 해 여름 내내 레프의 바이올린을 생각하며 보냈다는 저자는 결국 크레모나 바이올린 기행을 떠나게 됐어요. 그 이야기가 바로 이 책에 담겨 있어요.

신기한 건 저자의 경험을 공감하다 못해 몰입하여, 레프의 바이올린이 뿜어내는 매력에 빠져들었다는 거예요. 원래 바이올린에 대한 관심이 있긴 했지만 레프의 바이올린과 만나는 장면은 영화 그 자체였어요. 마치 누군가를 첫눈에 반해 시름시름 상사병을 앓다가 그 사랑을 찾아 나선 이야기처럼 느껴져서 크레모나의 아마티, 스타라디바리, 과르네리 공방과 피렌체의 메디디 궁정 등 바이올린 제작 과정이 흥미롭게 다가왔네요. 영원히 빛나는 슈퍼스타를 흠모하는 마음으로 읽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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