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들 - 여성은 왜 원하는가
캐럴라인 냅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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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구들》 은 캐럴라인 냅의 책이에요.

이 책은 저자는 거식증으로 고통받았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여성의 욕망과 그 종잡을 수 없는 욕구들의 본질을 하나씩 파헤쳐간 기록이자 생애 마지막 에세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몇 년에 걸쳐 쓴 책이 나오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작가에게 아무런 말을 전할 수 없다는 게 슬프지만 그녀의 글을 통해 누군가 희망을 향해 헤엄치게 되었다면 분명 기뻐할 거라고 믿어요.

 

넌 돼지야, 게으름뱅이야, 형편없는 인간이야.

욕망 대 박탈, 탐닉 대 자제, 돌봄 대 자기부정.

이런 것들이 특히 여성의 드라마 무대에 반드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 무대는 물론 지극히 인간적이지만 - 욕구를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 대 욕구가 우리를 압도하고 좌지우지하고 길을 잃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이 둘의 충동은 아담과 이브 이야기만큼 오래되었다 - 그 무대를 가로지르는 여성의 여정은 유독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운 방식으로 경험되고 표현될 수 있다. 이는 여자들이 태어나 자라는 동안 줄곧 주입받은 관념때문이다. 그것은 여성의 욕구는 처음부터 제한되고 축소되어 있으며, 여성의 갈망은 억제해야 하고 갈망을 만족시키는 일은 가장 엄밀하게 한정되고 사회적으로 용인된 방식으로만 허락해야 한다는 관념이다.

"죽지 않을 만큼 먹어라." 성인이 된 후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체중 문제와 씨름해온 36세의 방송 프로듀서는 목숨을 유지하는 수준 이상으로 먹는 것은 탐욕적이고 위험하며 여자답지 못하고 잘못된 일이라고 믿었던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떠먹이든 주입한 저런 훈계를 듣고 자랐다.

"그렇게 똑똑한 척하지 마라. 안 어울린다." 52세의 과학자는 아직도 이 말과 관련된 악몽을 꾼다.

... 모두 '하지 마'의 세계에서 나온 얘기들이다. ... 당신이 20세기 후반에 성인이 된 여자라면 어떤 형태로든 분명 그 말을 들었을 것이다.

... 여성의 욕구는 죄책감에 눌려서, 대상을 향해 곧바로 나아가기보다 오히려 대상을 피해 빙 둘러가는 방식으로 움직인다. (33-35p)

 

캐롤라인 냅은 그동안 억눌리고 뒤틀린 욕망을 새로운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힘겨운 작업인가를 자신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통해 보여주고 있어요. 스물네 살의 캐롤라인은 체중이 41킬로그램 정도였고 그 무렵 식사장애 전문 치료사와 상담을 시작했고, 오랫동안 거식증으로 영양공급과 쾌락을 둘러싼 투쟁을 했다고 하네요. 사실상 거의 모든 영역에서 갈망과 억제가 맞부딪치며, '나는 얼마나 굶주린 걸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하게, 난 무엇에 굶주린 걸까?'라는 질문에 시달렸다고 해요. 저자는 부모님의 조용한 불행과 과묵함에 대한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고, 본인이 모두가 숨 쉬는 공기에 어떤 식으로든 독을 퍼뜨리는 나쁜 아이라고 느꼈고, 아주 어려서부터 보상해야 한다는 강박에 쫓겨서 조용하고 수줍은 완벽주의자였다고 고백하고 있어요. 그녀의 삶은 욕구를 둘러싼 도전과 투쟁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거식증의 역사를 이루는 각각의 조각들, 불안과 죄책감과 자기혐오의 조각들을 끼워 맞추고나니 그 모든 것의 저변에 슬픔이 흐르고 있다는 점이 진심으로 슬펐어요. 왜냐하면 의식하지 못했던 심연의 상처가 건드려졌기 때문이에요. 아픔보다는 슬픔에 더 가까운 건 머리로는 이해하니까, 어쩔 수 없는 상처라서 그래요. 다행스러운 건 욕구라는 주제가 더 이상 우리 자신을 괴롭히지 않도록 내면을 돌보고 채울 수 있는 변화로 이끌었다는 거예요.

 

"... 주기적인 절망의 안개 속에서도 나는 시선을 살짝 돌릴 수 있다.

어느 정도의 공허함과 불만족은 삶의 불가피한 부분일 뿐 아니라

유용한 부분이기도 하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을 만큼은 시선을 지그시 다른 데로 돌릴 수 있다.

허기는 비록 불편하기는 해도 연료와 비슷하다.

우리가 계속 무언가를 추구하게 만들며,

그 작은 걸음마들을 하도록 힘을 주며,

잊고 있다가 문득 생간난 듯 새로운 영토로 우리를 떠밀어 주는 것이다.

... 그래서 이대로 충분한가? ... 완전히 확신을 갖고 대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마침내 모든 욕구를 이해하고 충족하는 일,

가장 높은 봉우리에 도달하는 일이란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대신 흡족함의 순간들...

내 개가 보내는 사랑의 시선으로, 친구와 나누는 농담으로, 

여기서 느끼는 애정의 불씨, 저기서 느끼는 이해로... 

이 삶에서 얻는 가장 좋은 것일지도 모를 순간들이 있다."

  (369-37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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