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북하우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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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 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집이에요.

아직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면 첫 책으로 추천하고 싶어요.

이 책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탄생 100주년 기념 소설집으로 초기 작품 열여섯 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짧지만 강렬한 여운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단편인 것 같아요. 최고의 범죄심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이유를 확인할 수 있어요.

열차가 떠나고 난 후에 남겨진 카키색 가방이 주인 없이 놓여 있어요. 과연 이 가방을 누가 가져갈까요. 플랫폼에는 그 가방을 유심히 바라보는 남자가 있어요. 왼쪽 다리를 심하게 절며 발을 질질 끌며 앞으로 나아가는 남자는 가방 쪽으로 다가갔어요. 이때 그쪽으로 여유롭게 다가가는 키 작은 남자는 플랫폼 끝으로 가더니 검은 터널을 본 다음 손목시계를 보았어요. 이 장면을 읽는 동안에는 제3자가 되어, 가방과 두 남자를 바라보게 돼요. 전혀 무섭거나 이상한 점은 없어요. 그러나 손바닥을 뒤집듯이 분위기는 한순간에 바뀌고 말아요. 가방을 든 남자와 그 뒤를 따라가는 남자 사이에는 둘 만의 기류가 생기고, 가방을 든 남자는 자신이 쫓기고 있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돼요.

신기하게도 작품마다 등장인물의 심리가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고 있어요. 낯선 마을을 아름답게 바라보던 애런은 호플리 부인이 "당연히 해로운 일은 아니겠지만,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또 있는 모양이에요." (78p)라는 말을 통해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꼈고, 망쳐버린 모든 멋진 것들을 떠올리게 되면서, 그 마을을 떠나게 돼요. 휘발유를 뿌리고 성냥에 불을 붙이는 루실, 그녀는 흡사 성인 같은 미소를 짓고 있어요. 나불거리는 불빛에 환히 빛나는 루실의 얼굴만 본다면 아름다운 여자라고 생각했을 거라는 표현이 섬뜩했어요. 자신의 마음도 모르는 인간들이 어떻게 타인의 마음을 알겠어요. 다만 본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작동하고 있어서 공포의 떨림은 느낄 수 있어요. "선반에서 이 모든 걸 지켜보고 있던 회색 알람시계로 눈을 돌렸다. 이제 약 칠 분이 지났다. 얼마나 걸렸을까?" (91p) 시계를 바라보는 일상적인 행동마저도 의심스럽게 만드는, 그 치밀한 묘사에 놀랐어요. 손톱을 물어뜯거나 눈꺼풀이 떨리는 것, 무심히 넘길 수도 있는 작은 행동과 몸짓이 하이스미스의 소설에서는 숨겨진 덫처럼 깔려 있어서 불시에 덮쳐오네요. 인간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드는 서스펜스의 대가다운 작품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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