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 김춘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김춘수 지음, 조강석 엮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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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은 김춘수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이에요.

우리에게 김춘수 시인은 <꽃>이라는 시와 함께 기억되는 분이라서, 꽃이 예쁜 이 가을에 어울리는 시인인 것 같아요.

이 책은 김춘수 시인의 작품 중 60편을 뽑아 엮은 시선집이며, 김춘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대산문화재단과 교보문고가 주최한 문학그림전의 도록을 겸하고 있어서 문학그림전에 참여한 화가의 이력이 별도로 수록되어 있어요. 시그림집 참여 화가들은 권기범님, 김선두님, 문선미님, 박영근님, 이진주님, 최석운님이며, 각 작품들이 시의 분위기와 절묘하게 어울려서 '시그림'이라는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졌어요. 시그림집이 주는 감동이 있는 것 같아요.



서풍부

                                          김춘수

너도 아니고 그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

니라는데......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간다 지나간다. 환한 햇빛 속을 손을 흔들며......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라는데,

온통 풀냄새를 널어놓고 복사꽃을 울려놓고 복사꽃을 울려

만 놓고,

환한 햇빛 속을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누가 그런 얼굴을 하고......

      (14-15p)


문선미 화백의 <서풍부>, 캔버스에 목탄 유화를 보면서 미처 헤아리지 못한 사연을 듣는 기분이었어요.

어떤 얼굴이었을까요. 두 손으로 두 눈을 가리고 서 있는 소녀와 함께 바람에 흩날리는 풀과 꽃.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이라고 표현한 시인의 마음이 어렴풋이 보였어요. 바람 소리, 그 안에는 아름답고도 슬픈 사연을 나즈막히 읊조리는 목소리가 있을 거라고... 얼굴은 가리고 있지만 귀는 열려 있는 소녀처럼 우리들도 귀 기울여 들어주길 바라는 게 아닐까요.

김춘수 시인의 작품 세계는 여러 가지 키워드들과 연결된다.

그는 존재, 본질, 무의미, 역사, 폭력, 이데올로기, 유희, 방심상태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시적 고투와 더불어 답파했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하는 물음은 "꽃인 듯 눈물인 듯 어쩌면 이야기인 듯" 그를 이끌어 갔다.

『처용단장』 (1991)을 출간하고 오랜 모색을 일단락한 이후에 처음 발표된 시집 『서서 잠자는 숲』 (1993)에 실린 다음과 같은 시는 그의 오랜 시적 여정에 스스로 부치는 헌사가 아닐까?

어떤 늙은이가 내 뒤를 바짝 달라붙는다. 돌아보니 조막만한 다 으그러진 내 그림자다.

늦여름 지는 해가 혼신의 힘을 다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

- 「산보길」 전문 (185-186p)



조강석 문학평론가님의 작품 해설을 읽으면서 김춘수 시인의 생애를 알게 되었고, 시의 언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물론 역사와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폭력에 예민한 감각과 사유를 했던 시인을 온전히 이해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뭔가 울컥하는 감정을 느꼈어요.

"역사는 비껴 서지 않는다. 절대로, 그러나 눈이 저만치 찢어지고 턱이 두툼한 (그 왜 있잖나?)"로 시작되는 「강설」 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역사를 떠올렸어요. 여전히 나라를 팔아먹으려는 무리들, 개탄하며 '역사는 비껴 서지 않는다. 절대로, 땅에 떨어진 망개알을 겨울에도 썩게 한다.' (152p)라는 문장을 곱씹었어요. 시인의 산보길에서 마주한 으그러진 그림자가 눈앞에 어른거렸어요. 치열하게 의미를 탐구했으나 무의미로 회귀했던 시인의 삶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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