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전시관
설혜원 지음 / 델피노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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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이 모든 현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때가 있어요.

만약 SF영화처럼 가상세계를 체험하고 있는 거라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이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요.

<허구의 전시관>은 설혜원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에요. 

모두 일곱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중 <빈한승빈전>이 흥미로웠어요. 인류의 모든 삶을 관할하는 인생행정소가 존재한다는 설정부터 주인공 '나'는 삼 개월 계약을 맺고 일하는 직원이라는 상황들이 재미있어요. 무엇보다도 조선시대의 빈한과 한국시대의 승빈이라는 동일 인물을 시공간 차이를 두고 관찰하는 과정이 드라마나 영화의 장면처럼 생생하게 그려졌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인생행정소 직원인 '나'는 스크린 속 빈한과 승빈을 바라보며 그 인물에게 몰입하고 있어요. 그래서 빈한과 승빈의 인생을 망치는 우호와 같은 악행 레벨을 가진 존재는 꼭 벌을 받아야 한다는 설문 답안을 작성했어요. 인생행정소 직원들의 임무는 악과 선의 레벨을 집계하는 일이에요. 그 내용을 상급자에게 전달하며 행동 레벨에 따라 삶으로 그 대가를 치르게 하는 거예요. 마치 신처럼, 옥황상제가 죽은 인간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듯이 처리하는 거죠. 과연 못된 인간 우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말에는 반전이 있어요. 

설혜원 작가님이 쓴 이 책이 허구의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는 사실이 힌트가 될 수도 있겠네요. 왠지 나머지 이야기들도 인생행정소에서 모니터하는 인간들의 사례처럼 느껴졌어요. 지구에 살고 있는 인간이란 종이 그동안 탐욕스럽게 자연을 약탈하고 서로 싸워대면서 많은 것들을 파괴해왔지만 이제 그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잘못을 깨닫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인류의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우주선에서 바라본 지구는 창백한 푸른점이라고 했던가요. 하물며 인간은 점보다 더 작은 먼지, 보이지도 않는 생명체인데 그 인간의 삶을 카메라로 줌인하듯 바짝 당겨서 들여다보면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어요. 누군가 공놀이를 하듯 지구를 마구 흔들어놓은 것처럼.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과 환상이 뒤섞여 있어요. 그 이야기를 읽는 우리는, 허구의 세계라는 블랙혹에 빠져들었고요. 신나게 타인의 삶을 관람하다가, 문득 나 자신이 발가벗겨져 구경거리가 된 느낌이랄까. 어쩌면 우리의 삶도 허구의 전시관에 걸린 작품일 수도... 불편한 속내를 들켜버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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