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트리플 5
장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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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만 먹으면>은 장진영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에요.

자음과모음의 트리플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이고요. 책의 두께, 글자수로만 따지면 너무나 짧은 이야기인 게 분명한데, 이상하게도 쉽게 넘어가질 않네요. 마치 대답을 기다리는 것 같아서 잠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 일시정지... 리플레이... 일시정지... 리플레이

모두 세 편의 단편과 석 장의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어요.


<곤희>는 뒷맛이 씁쓸했어요. 타인에게 베푸는 친절, 그 이면에 숨겨진 위선이 낯설지 않은 건 다들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너도 알고 나도 알지만 서로 모르는 척 넘어가는 것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적당한 가면이 필요하니까요. 그 중심에 놓여 있는 인물이 곤희예요. 연극 무대 위에 꼭 필요한 소품처럼 제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곤희와 그 아이를 바라보는 '나' 사이에는 일정한 거리가 있어요. 그래서 곤희가 어떤 아이인지, 어떠한 사연을 지녔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더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딱 거기까지만 선 긋기. 


"공평이 아니라 공정하십시오, 후배님." 

나는 그의 잔 조금 아래에 내 잔을 부딪쳤다. (14p)


선배님의 조언대로 '나'는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이 어디까지인지 알게 되었고, 그래서 마지막이 씁쓸했어요. 비로소 그들이 정의내린 '공정'을 이해했으니까요.


<마음만 먹으면>은 불가해한 세상을 병동 침실에 누워 있는 '나'를 통해 보여주는 것 같아요.

아무도 그 이유를 모르고, 그 누구도 잘못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왜 이러한 상황이 벌어진 걸까요. 


"이유가 뭐야......"

나는 눈가에 팔을 얹었다.

"내가 너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니?"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엄마가 말로 하라고 했다. 나는 아니라고 말했다. 모르겠다고 말했다.

"엄마 무서워."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무서워."   (68p)


엄마와 나, 나와 딸... 연결고리처럼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여전히 무섭고 똑같이 모른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았어요. 의식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는 듯 지나쳤을 거예요.

만약 <마음만 먹으면>을 읽지 않았더라면 '마음만 먹으면' 다음에 올 내용을 다르게 상상했을 텐데, 그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죠.


<새끼돼지>는 <곤희> 2탄 같은 이야기예요.

고모의 아들의 부인이 낳은 아들과 '나'는 얼마나 가까운 사이일까요. 사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질문이라서 답할 필요도 없어요.

나와 너, 그 관계를 결정하는 건 법적인 촌수가 아니라 마음의 거리일 테니까요. 물론 현실에서는 법적인 관계가 더 유효한 경우도 있지만.


"제발......" 나는 눈두덩을 누르며 말했다. 

"남 일에 간섭하지 마."   (92p)


왕자 같던 '그'가 '돼지새끼', 아니 '새끼돼지'가 되어버리는 게 현실이에요. 사람 마음이란 그렇게 간사한 것 같아요. 손바닥 뒤집듯이 너무 쉽게 변하네요.

새끼돼지건 아기돼지건 뭐라 부르던간에 결국은 '남'이라는 뜻이에요. 냉정하게 구는 사람이나 다 퍼줄 듯 다정하다가 돌변하는 사람이나 다 똑같은 것 같아요. 

그래, 이거였구나 싶었어요. 처음엔 씁쓸했다가 가슴 철렁했다가 다시 제자리에 돌아온 것 같아요.

<마음만 먹으면>은 장진영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집이라고 해요.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사연은 달라도 차가운 얼음을 댄 듯 느낌이 같았어요. 

마지막에 실려 있는 에세이 <한들>은, 에세이라고 적혀 있지 않았다면 소설이라고 여겼을 이야기예요. 덤덤하게 날리는 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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