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 - 아이언맨과 아리스토텔레스를 함께 만나는 필름 속 인문학
라이너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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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시네마 천국>의 소년 토토처럼 영화를 사랑하던 시절이 있었어요. 가수 이문세와 이적이 함께 불렀던 '조조할인'의 추억을 간직한 세대라면 종로 일대의 극장들과 그 시절에 인기 영화들이 함께 떠오를 거예요. 그때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나면 친구와 영화 이야기로 몇 시간 수다를 떨고, 팜플렛을 보물처럼 클리어 화일에 고이 보관했었더랬죠. 

물론 극장에서 못본 영화들은 비디오 대여점을 통해서 엄청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제가 감히 영화를 사랑했노라고 말할 수 있는 건 그때 그 시절엔 영화를 보는 눈빛이 초롱초롱했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저절로 신이 났기 때문이에요. 사랑하는 연인을 대하듯이.

그런데 사회생활을 하느라 피곤에 절어버린 몸뚱아리가 스르륵 감기는 눈꺼풀을 버텨내지 못하면서, 극장에서 꾸벅대며 조는 일이 벌어졌어요. 솔직히 충격받았어요. 어떻게 내가 영화를 보면서 잠이 들었지? 인정하긴 싫지만 어느 순간 영화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렸고, 감동마저 사라졌더라고요.

이토록 장황하게 개인적인 추억을 늘어놓는 이유는 전부 이 책 때문이에요. 


<철학 시사회>는 영화 유튜버 라이너의 '영화 × 철학' 이야기 책이에요.

저자 라이너는 현재 유튜브 채널 '라이너의 컬쳐쇼크'에서 영화 이야기를 나누며 활발하게 활동 중이라고 하네요. 이 책은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한때 문학과 철학에 빠져 청년 시절을 보냈다는 저자는 '영화'를 통해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특별히 이 책에 소개된 영화 목록은 다음과 같아요.


◆ 어벤져스 : 인피니티 워 - 감독 : 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8년)  

◆ 블레이드 러너  -  감독 : 리들리 스콧 (1982년)  

◆ 12인의 성난 사람들 (feat. 리갈하이)  - 감독 : 시드니 루멧 (1957년)  

◆ 매트릭스 -  감독 : 릴리 워쇼스키, 라나 워쇼스키 (1999년)  

◆ 기생충 - 감독 : 봉준호  (2019년)  

◆ 그래비티 - 감독 : 알폰소 쿠아론 (2013년)  

◆ 조커 -  감독 : 토드 필립스 (2019년)  

◆ 내부자들  -  감독 : 우민호 (2015년)  

◆ 다크 나이트 (2008년)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2008년)  ◆ 소리도 없이 - 감독 : 홍의정 (2020년) 

◆ 설국열차  - 감독 : 봉준호  (2013년)

◆ 그녀 - 감독 : 스파이크 존즈 (2013년) 


한두 편을 제외하면 이미 봤던 영화라서 책을 읽는 내내 영화의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올랐어요. 워낙 유명한 영화들이라서 대략적인 줄거리는 많이 알고 있을 텐데, 그냥 영화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서로 공감할 만한 감상평으로 끝났을 거예요. 하지만 저자는 그 내용 속에 숨겨진 철학을 끄집어내면서 동시에 열한 명의 철학자들을 소환하고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소크라테스, 데카르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 마키아벨리, 융, 마르크스, 붓다를 영화 이야기를 하며 만나게 될 줄이야... 

저한테는 철학자들의 등장이 반가웠어요. 그동안 결별했던 영화와의 재회랄까. 영화에 대해 식었던 열정이 철학을 통해 이성적인 감각으로 되살아난 것 같았어요.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세상을 향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학문이라고, 저자는 바로 그 '왜'라는 질문이 철학뿐만이 아니라 SF영화의 출발점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매우 공감했어요. 

다시금 찾아보는 명작 중에 <블레이드 러너>와 <매트릭스>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아니 예전보다 더욱 감탄하는 SF영화인데, 라이너의 철학 시사회를 접하고 나니 구체적인 이유들을 찾을 수 있어서 좋았어요. 


"로봇에게 패배한 인간은 노예로 추락합니다. 육체는 생체전지로 쓰이고 정신은 가상현실 매트릭스에 갇히죠.

이 매트릭스는 데카르트가 소환했던 바로 그 악마와 흡사합니다.

철학자 데카르트는 한없이 의심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감각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기 이ㅜ해

'아주 교활하고 전능한 악마가 나를 속이고 있다면'이라는 가정을 했어요.

그렇습니다. 보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거짓일 가능성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데카르트가 사용한 인식론의 방법이었던 거죠."   (96p)


데카르트가 살았던 시대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사람들이 큰 고통을 받았고, 사회가 불안했기 때문에 신비주의와 미신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해요. 이러한 시대에 데카르트는 합리주의 운동의 선구자로 떠오르면서 중세의 낡은 사고방식과 세계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네요. 이것이 철학과 철학자가 존재하는 이유인 것 같아요. 철학은 어려운 학문, 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삶의 도구였네요.

가수 나훈아님이 외쳤던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 덕분에 소크라테스가 소환되었듯이, <철학 시사회> 덕분에 다양한 영화들 속에서 철학자들을 소환할 수 있었네요. 영화라는 가상세계가 현실의 우리들에게 끼치는 영향력을 새삼 확인하는 계기였어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어도 한 사람의 생각을 바꿀 수는 있으니까요.

<철학 시사회>에 소개된 영화들은 강력추천, 저 역시 다시 또 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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