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주제 사라마구 지음, 김승욱 옮김 / 해냄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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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헤이스, 어디든 살 곳이 필요하지, 어디가 아닌 곳은 하나도 없고,

삶은 삶이 아닌 다른 것이 될 수 없으니까, 이제야 난 이것을 알아차리고 있네, 

무엇보다도 사악한 것은 사람이 눈에 보이는 지평선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타고 있지 않은 배, 그것이 우리 여행의 배가 되었으면 하네.  

... 잘 가게, 페르난두.  잘 가게, 히카르두.   (229p)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는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이에요.

1984년 출간된 작품이에요. 일천구백팔십사년.

소설의 시간은 1935년 11월 29일부터 시작되고 있어요. 주인공 히카르두 헤이스가 리스본에 도착한 시각.

그는 하일랜드 브리게이드호를 타고 리스본 항구에 도착했고, 강과 가까운 호텔을 찾다보니 브라간사 호텔 201호에 묵게 되었어요.


이 소설은 특이한 시점으로 이야기를 들려줘요. 

주인공 히카르두 헤이스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을 지켜보는 눈.

우리는 그 눈을 빌려 그들의 삶을 엿보고 있어요. 그들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히카르두 헤이스는 누구인가.

궁금증을 풀려면 문장과 문장 사이, 사람들간의 대화에서 단서를 찾아야 해요.

1887년생인 그는 현재, 마흔여덟 살 미혼 남성으로 직업은 의사예요. 포르투갈 사람이지만 브라질로 이민갔다가 십육 년만에 조국으로 다시 돌아온 거예요.

왜 돌아왔냐고요. 그건 차차 풀어가야 할 이야기예요.

그를 알기 위한 첫 번째 단서는 '페르난두 페소아'예요. 히카르두가 도착한 며칠 뒤, 신문에서 다음의 기사를 읽게 돼요.


애국적인 열정을 담은 시이자 가장 아름다운 시 중 하나인 『메시아』의 놀라운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가 

토요일 밤늦은 시각에 상 루이스 병원의 기독교 침상에서 뜻밖의 죽음을 맞아 어제 땅에 묻혔다는 이야기.

시를 쓸 때 그는 페르난두 페소아일 뿐만 아니라 알바루 드 캄푸스이기도 하고, 알베르투 카에이루이기도 하고, 히카르두 헤이스이기도 했다. (45p)

실제로 페소아는 자신의 실명 외에도 대략 75개의 다른 이름으로 많은 글을 썼는데, 그는 이를 '필명筆名'이 아닌 '이명異名'이라 불렀다고 해요. 그 이유는 각 개인의 진정성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이래요. 호텔에서 먹고 자고 산책하는 것 외에 히카르두가 유일하게 하는 일이 바로 시를 쓰는 거예요. 비록 한 문장이지만.


"페르난두 안토니우 노게이라 페소아, 마흔일곱 살의 독신 남자, 마흔일곱이라는 나이에 주목하라, 리스본에서 태어나 영국의 한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문단에서 작가 겸 시인으로 확실히 자리를 잡은 그의 장례식이 엄수되었다, 관에는 들꽃이 뿌려졌는데, 꽃들이 금방 시든 것을 보면 그것이 꽃에게는 불운이었을 것이다. 히카르두 헤이스는 자신을 프라제르스로 데려다줄 전차를 기다리며 무덤가에서 울려 퍼진 장례 추도사를 읽는다. 그가 신문을 읽고 있는 이곳은 예전에 어떤 남자가 교수형을 당한 곳 근처인데, 거의 이백이십삼 년 전 동 주앙 오세의 재위 중에 일어난 일임을 누구나 알고 있다. 『메시지』에는 이 왕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46p)


히카르두 헤이스는 페르난두 페소아가 묻힌 묘지를 찾아갔고, 호텔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어요. 

페르난두의 재능을 지녔지만 너무 일찍 죽어서 시인이 되지 못한 사람, 히카르두의 능력을 지녔지만 의사나 시인이 되지 못한 사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쌓여 있던 감정이 터져나온 것 같아요.

그로부터 며칠 뒤, 눈앞에 페르난두 페소아가 나타났어요. 유령이냐고요? 

글쎄요, 중요한 건 두 사람이 만나자마자 애정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는 거예요. 오랫동안 떨어져 있다가 다시 만나 기뻐하는 모습이었다는 거죠. 페르난두 페소아는 약 여덟 달 동안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는데 히카르두 헤이스가 만나러 직접 찾아온 거예요. 왜 여덞 달인가, 그건 어머니 배 속에서 보내는 기간과 죽은 다음의 시간을 맞추는 균형의 문제라고 하네요. 페르난두 페소아가 히카르두 헤이스에게 물었어요. 어떻게 포르투갈에 오게 된 거냐고. 그러자 헤이스는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안에 접힌 종이를 빼내어 내밀었어요. 그 종이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페르난두 페소아가 죽었다 마침표 나는 글래스고로 떠났다 마침표 알바루 드 캄푸스. (116p)


이 전보를 받고 돌아오기로 결심했던 거래요. 죽은 페르난두 페소아는 그가 원하는 시간에 불쑥 나타났고, 히카르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라졌어요.

멀쩡히 살아있는 마흔여덟 살의 의사가 이미 죽은 마흔일곱 살의 시인을 만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두 사람의 대화를 통해서, 히카르두의 삶을 통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어요.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는 서로 다른 꿈인 것 같다.

세월은 짧고, 인생 또한 너무나 잠깐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기억뿐이라면 그편이 낫다."  (388p)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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