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혼돈
슬라보예 지젝 지음, 강우성 옮김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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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고?

됐거든! 


"진실과 행복은 함께 가지 않는다. 

진실은 아프고, 불안을 가져오며, 우리 일상생활의 매끈한 흐름을 파괴한다.

현실은 방향타 없는 공간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가르침이 바로 여기에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할 궁극적 선택은 둘 중 하나다.

행복하게 조종받길 원하는가, 아니면 진정한 창조성의 위험, 이 위험이 불러일으키는 

지속적 불안에 자신을 과감히 드러낼 것인가?" (187p)


이 책을 펼쳤다는 건 후자를 선택했다는 의미일 겁니다.

제목이 마치 선전포고 같습니다.

천.하.대.혼.돈.

<천하대혼돈>은 슬라보예 지젝이 여러 언론 매체에 기고한 짧은 글들을 묶은 책이라고 합니다.

현대철학에서 가장 논쟁적인 인물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로 꼽힌다는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바로 슬라보예 지젝이 쓴 글들이 한국에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의 위기는 명백한 사실이 되었습니다. 다만 이 위기는 코로나 백신이나 치료제로 해결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지젝은 우리 인류가 처한 위험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혼란 앞에 국가 간 경쟁이라는 논리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그러니 이성적 반성 능력을 끌어올려 반역을 꾀하길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젝은 세계정세, 민주적 사회주의, 포퓰리즘, 인종차별, 문화권력, 디지털 정치, 문화와 권력, 기후 위기 등 전 지구적 사안이 가진 본질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생존이 걸린 위험한 항해를 막 나섰다고,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새로운 합의를 향한 요구가 있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정치적 삶은 새로운 하나가 될 필요가 있는데 그 새로운 하나가 무엇이 될지는 단정지을 수 없습니다.

지젝은 마오쩌둥을 인용하여, "천하가 대혼란이지만 기운은 상서롭다 (천하대란, 형세대호)"라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생겨날지 예측할 수 없으나 정신을 바짝 차려서 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책을 통해 깨달아야 할 것은 무지와 착각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대혼란을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짜 우리를 괴롭혔던 부자유, 모욕, 사회 부패, 품위 있는 삶의 전망 부재 등이 새로운 형태로 지속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유를 해치려는 위협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은 대놓고 압박하는 게 아니라 부자유 자체가 자유로 통할 때 생겨납니다. 

새로 얻은 자유는 실질적으로 본인이 원하는 형태로 자신의 불행을 선택할 자유라는 것.  일단 자유롭다는 이유로 대다수가 가난한 상태로 그대로 머물면서 가난의 책임을 스스로에게 돌리게 된다는 것. 이런 곤경에 처하게 된 건 우리 목표 자체에 결함이 있다는 뜻이며, 애초에 민주주의적 자유라는 고귀한 원칙 자체에 내재된 실패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이 점을 이해하는 일이 대혼돈을 벗어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전적으로 지지해야만 하지만 그 치명적 한계 역시 알아야 합니다.

좌파가 제시해야 할 새로운 공통의 영역, 그 새로운 하나는 바로 근대 유럽의 위대한 정치-경제적 성취, 즉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입니다. 이것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닙니다.

역설적이게도 오늘날의 새로운 상황에서 옛날식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를 고집하는 것은 거의 혁명을 하자는 태도입니다. 샌더스와 코빈의 제안은 때로는 반세기 전 온건한 사회민주주의자의 주장보다도 훨씬 덜 급진적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사회주의적 급진주의자로 매도당합니다. 포퓰리즘적 우파가 국수주의적인 것은 맞지만 자신을 국제적 네트워크를 지닌 조직으로 만드는 일에서는 좌파보다 낫습니다. 따라서 새로운 좌파 기획은 오직 포퓰리스트의 국제주의와 맞먹을 정도로 스스로 전 지구적 운동으로 조직할 때만 살아날 것입니다. 지젝은 정말로 트럼프를 물리치고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수호할 가치가 있는 것을 구원하는 유일한 길은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주력부대에서 이탈한 분파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포퓰리즘에 맞서려면 자유주의적 기획 자체의 약점을 비판적으로 응시해야 하며, 포퓰리즘이 약점의 증상일 뿐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궁극적으로 포퓰리즘은 통하지 않는다고 단정합니다. 우파적 변종은 속임수를 쓰며, 좌파적 변형은 훨씬 복잡하게 허위입니다. 오늘날 근본적 변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전 지구적 위기 때문입니다. 급진적 변화만이 생태적 파국과 유전공학의 위협 및 우리 삶의 디지털 통제 같은 위험에 대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전 지구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보편적 연대와 협력을 해야 합니다.

지젝의 <천하대혼란>은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행동을 촉구하는 외침입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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