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의 일 - 언어만 옮기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서
박소운 지음 / 채륜서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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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직업의 세계, 그중 통역사는 미지의 영역이에요.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통역사의 일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 영화 시상식 장면 덕분이에요.

통역사가 단순히 언어를 옮기는 작업이 아니라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여 의미 전달을 하는 소통의 매개체라는 점에서 '언어의 마술사'라고 느꼈어요.

과연 현직 통역사가 이야기하는 <통역사의 일>은 무엇일까요?


첫 번째 에피소드부터 좀 놀랐어요. 한국인 강연자가 어차피 영어로 통역한다는 생각 때문인지, 전혀 유쾌하지 않은 농담을 던지고, 유독 반말을 많이 해서 곤란했다고 해요. 강연자의 말을 그대로 전달하다간 무례할 수 있으니 담담하고 정중한 표현으로 통역하면서 내내 입이 바짝 마르고 얼굴이 붉어졌다고 해요. 그날 청중이 제3세계 여성들이 아니었다면 강연자가 그런 식으로 말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할 말, 못 할 말이 있다. 이 '못 할 말'을 통역해야 할 때가 가장 어렵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 전문 지식이 있고 없고 보다도 이게 더 힘들고 무섭다.

미처 모르고 범하게 되는 상대방에 대한 무례.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말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걸 모르는 걸까.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흔한 속담의 의미가, 통역 일을 하며 나날이 묵직하게 와닿는다."   (11p)


통역 현장에서 겪는 여러 가지 고충뿐 아니라 통역사를 관광 가이드로 오해하는 사람들 때문에 더 힘들었다고 해요. 요즘은 AI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해주는 시대라고는 해도, 사람과 사람 간 소통의 간극을 메워주는 건 통역사만이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자는 통역사만의 긍지와 자부심이 있다고 하네요. 훌륭한 태도인 것 같아요. 그건 일을 잘 해내는 것과는 별도로 우리 모두가 갖춰야 할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또한 통역에는, 소통에는 높고 낮음이 없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적이에요. 사람의 의중과 진심을 헤아리고 그만큼 전할 수 있는 깊이를 지닌 통역이라면 직업을 넘어 사명이 될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통역사를 선망의 대상으로 보기도 해요. 국제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언론에 드러나면서 화려한 직업처럼 비쳐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진짜 전문 통역사가 아니면서 행세하는 경우가 있었나봐요. 통역사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는 통역대학원 입시, 대학원, 그리고 통역 현장으로 나와서까지 계속되는 경쟁을 해야 해요. 드물게 국내 또는 해외 통역대학원을 졸업하지 않고도 본인이 구사하는 언어권에서 자격시험, 인증시험 등에 통과해 통역 업무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공분을 사는 거래요. 실제로 자칭 통역사로 유명세를 얻어 중요한 국제 행사의 통역을 맡았다가 크게 망쳤고, 그 후 조용히 사라졌다는 후문이에요.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 진짜를 알아보자고요.

세상에 힘들지 않은 직업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어떤 직업이든 제대로 알고 존중하면 좋지 않을까요.

아직도 남아 있는 편견에 몸소 부딪치고 맞서야 하는 통번역사들을 위하여,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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